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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한 커피왕’이 한국전쟁 62돌 기념식에 온 까닭

중앙일보 2012.06.25 02:07 종합 31면 지면보기
마리아노 오스피나 회장이 콜롬비아 대통령이었던 할아버지의 취임식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오스피나 대통령은 한국전쟁에 군대를 보낸 유일한 남미 국가원수다. [박종근 기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회사의 주인이 한국전쟁 62주년 기념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참전 혈맹국 콜롬비아 출신
카스트로에 대통령궁 피격
할아버지가 파병 밀어붙여
“한국 평화·자유 자랑스럽다”



 콜롬비아 사람인 마리아노 오스피나 바라야(58) 회장이 주인공이다. 콜롬비아는 6·25전쟁 때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군대를 보낸 ‘혈맹국’이다. 그 결정을 내린 사람이 바로 회장의 할아버지인 오스피나 페레즈 전 대통령이다.



 “당시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모두가 파병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혼자 밀어붙이다시피 해서 1950년 7월 28일, 약 5000명의 군대와 군함 한 척을 한국에 보내기로했습니다. 유엔에서 파병을 요청한지 단 이틀 만에 말이죠.”



 여기에는 6·25전쟁이 터지기 2년전 벌어진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48년 카스트로 형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공산주의 혁명군대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기습 공격했다. 오스피나 대통령은 부인과 함께 양 손에 리볼버를 쥐고 100명 남짓한 경호병들을 지휘하며 사투를 벌였다. 결국 공산군들은 5시간 뒤에 도착한 수도경비부대와 교전 끝에 퇴각했다.



 오스피나 회장은 ‘평화와 자유’ 라고 쓰여진 메달 사진을 꺼냈다. 대한민국과 콜롬비아 재향군인회가 오스피나 대통령 사후에 내린 최고 영웅훈장이다.



 그는 “우리 가족은 한국의 평화와 자유에 보탬이 된 것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전쟁기념식에서 다섯 명의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을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할 것” 이라고 말했다. 오스피나 가문은 대통령만 3명을 배출한 정치 명문가다. 하지만 정작 장손인 회장은 미국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1991년 함께 유학하던 남동생이 결혼식을 위해 콜롬비아에 갔다가 납치돼 이듬해 살해됐기 때문이다. “당시 고국상황이 너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말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와 가장 많이 닮고, 어릴 때 제가 늘 데리고 다니면서 놀던 동생이었는데…도저히 고향에 갈 수가 없었어요.”



 그 뒤 오스피나 회장은 정치에 등을 돌리고 모든 열정을 ‘커피’에 쏟았다. 미국에선 그를 ‘망명한 커피왕’이라고 부른다. 그의 고조부는 1835년 콜롬비아에 처음으로 대규모 커피농장 시스템을 도입했다. 콜롬비아 고급커피의 상징인 ‘후안발데스(콧수염을 기른 농부와 당나귀)’상표를 만든 것도 대통령이 되기 전 커피조합장을 지낸 그의 할아버지다.



 오스피나 회장은 “이제 할아버지가 사랑한 나라 한국에 우리들의 프리미엄 커피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오스피나 커피는 100% 아라비카 티피카 원두로 만든다. 이르면 7~8월 신세계백화점에 론칭해 항공기 1등석·5성급 호텔 등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에 스타벅스를 비롯해 수많은 커피숍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는 이게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그 만큼 다양한 커피를 즐길 기회가 있는 거니까요.”



 그는 하루에 5잔 이상 커피를 마신다. 속이 괜찮냐고 했더니 정색을한다. “커피는 원래 쓴 음료가 아니예요. 신선한 커피는 첫맛이 부드럽고 끝맛은 샤도네이 와인처럼 청량감이 있어요. 전체적으로 ‘편안한 맛’을 주는 게 진짜 커피입니다.” 그는 “한국인들은 최고의 것에 대한 열망이 있는 민족”이라며 “그래서 경제도 짧은 기간 동안 이토록 놀랍게 발전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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