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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 압박에도 꿋꿋한 메르켈 … 유로본드 발행 “Nein”

중앙일보 2012.06.25 00:26 경제 3면 지면보기
유로존 4자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 22일(현지시간)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정상이 이탈리아 로마에 모여 유로본드 발행 등을 논의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날 4개국 정상 공동 기자회견 도중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마 AP=연합뉴스]


포위 협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 로마 외곽,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빌라 마다마에서 22일 열린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빅4 정상회의 모습이다.

[뉴스분석] 뾰족한 대책 못 낸 유로존 빅4 회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사실상 포위해 압박했다.



 올랑드 등 셋이 집중적으로 요구한 내용은 경기부양, 유럽통합채권(유로본드) 발행, 구제금융펀드의 회원국 국채 매입이었다. 유로본드와 구제금융펀드 전용은 발등에 떨어진 불인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다. 경기부양은 짧게는 6개월 이후를 겨냥한 대책이다.



 결과는 올랑드 진영의 판정패였다. 메르켈은 1300억 유로(약 191조원)를 경제성장을 위해 투입하는 방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로본드 발행이나 구제금융 자금을 돌려 쓰는 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메르켈 특유의 구조주의적 접근이다. 메르켈은 2009년 11월 그리스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되풀이 말했다. 그는 대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지난해 하반기 시장이 한창 요동치는 와중에 신재정협약을 내놓으며 회원국들을 압박한 게 대표적이다. 이번에도 메르켈은 “회원국들이 재정과 경제 정책 권한을 유럽연합(EU)에 더 넘겨줘야 유로본드를 고려할 수 있다”고 버텼다.



 메르켈의 우직함이 답답했을까.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유로본드 도입에 10년이 걸려선 안 된다”는 말로 불만을 토로했다. 위기의 파도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넘보고 있는 와중에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채권시장도 메르켈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주말 스페인 국채 수익률은 위기 단계인 연 7% 대에서 6.3%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위험한 수준이다.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스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금리다.



 블룸버그 통신은 “유럽 채권시장 사람들이 빅4 정상회의에서 뾰족한 대책이 합의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듯하다”고 24일 내다봤다. 시장이 기대한 대책은 바로 구제금융 펀드의 전용이었다. 몬티 이탈리아 총리와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빅4 정상회의에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등을 동원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여 이자 부담을 줄여야 비극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요구는 메르켈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이번 주에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 매도 공세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까닭이다.



 아직 타협의 여지는 남아 있다. 유로존 빅2인 메르켈과 올랑드는 27일 따로 만나기로 했다. 하루 뒤인 28일부터 이틀 동안 진행되는 EU 정상회의에 앞서 이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다. 공은 돈줄을 쥔 메르켈 쪽에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하지만 메르켈도 독일 국내 상황에 발목이 잡혀 있다. 다른 나라에 통 큰 양보를 할 처지는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로존 미래를 놓고 독일인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전했다.



유로존 위기국들을 구제하는 데 많은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게 1차적인 원인이다. 그 바람에 “‘정말 유로화가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품는 독일인마저 나타나고 있다”고 FT는 보도했다. 이번 주 독일·프랑스 정상회담과 EU 정상회의에서도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획기적인 대책이 나오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또 한 번의 고비가 다가오고 있다. 26~27일 이틀 동안 이탈리아는 장단기 국채 120억 유로(약 17조6000억원)어치 이상을 입찰에 부칠 예정이다. 최근 두 달 새 남유럽 국가들이 조달한 자금 가운데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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