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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성 우시(無錫)~전장(鎭江)

중앙일보 2012.06.25 00:13


▲인구가 그렇게 많은 나라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길이 고행(孤行)이 될진 몰랐다. 안전에 대한 수많은 우려를 무릅쓰고 여행을 떠났지만 길 위에서 강도는커녕 자전거 여행자도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만으로도 중국 사람들의 시선을 잔뜩 받았다.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 ⑨ 중국괴담 공포… 휴대폰 한 대에 목숨 걸고 길 떠나다



오늘은 처음으로 100㎞ 넘는 거리에 도전한다. 목적지는 장쑤(江蘇)성 전장(鎭江). 소설가 펄 벅의 옛집이 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누나의 책장에 꽂혀 있던 펄 벅의 『대지』로 독서를 시작했다. 맨날 골목에서 놀던 중학교 1학년 때 그림 없는 두꺼운 책도 읽을 수 있다는 놀라운 경험을 『대지』는 선사했다. 문학으로 멋을 부리던 당시의 청소년들이 그렇듯 『대지』에서 시작해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과『데미안』을 거쳐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나『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나아갔다.



우시(無錫)를 떠나기 전 사활이 걸린 문제 하나를 해결했다. 중국 휴대전화라는 비상연락수단을 확보한 것이다. 중국 휴대전화는 한국과 달리 단말기와 통신사를 각각 선택할 수 있다. 단말기만 있으면 통신사의 심(SIM) 카드를 사서 끼워 쓴다. 2년 약정과 같은 기간제가 아니라 200위안(3만7000원가량), 300위안짜리와 같이 선불카드를 사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다. 가입절차는 더 단순해서 담배가게에서도 심 카드를 살 수 있다.







상하이 훙차오(虹橋) 공항에서 200위안짜리 심을 샀는데 숙소에 와서 끼워 넣으려니까 안 맞는다. 심은 네모의 한쪽 모서리를 자른 오각형 모양이다. 이 오각형의 한쪽 면에 새끼손톱만큼 작은 메모리칩이 붙어 있다. 아이폰의 입력부도 오각형 형태여서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넣으면 심이 뒤집어진다. 아이폰은 칩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넣어보다가 휴대전화 매점에 갔더니 가위로 아이폰에 맞게 잘라서 넣어준다. 최첨단 USIM(Universal Subscriber Identification Module)을 청동기시대부터 있어온 가위로 자르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에 공연히 웃음이 나왔다.



중국 여행에서 가장 걸리는 문제는 안전이다. 중국 괴담들은 한 번씩 들어봤을 것이다. 장기를 내줬다든지 인육을 먹었다든지. 탄탄한 구성력이 있는 괴담도 있다. 시골 마을버스 안에서 건달 두 명이 여성을 희롱하다가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명령한다. 불응하는 운전사를 때려서 차를 세운 뒤 근처 풀밭에서 여성을 겁탈한다. 승객들이 외면하거나 훔쳐보고 있는 가운데 한 남자승객이 말리려다 칼에 찔리고 건달들은 달아난다. 피해 여성은 울면서 버스로 돌아온 뒤 운전할 수 없게 된 운전사를 대신해서 운전석에 앉는다. 칼에 찔린 남자도 타려고 하자 “남의 일에 왜 참견이냐”며 문을 닫아버리고 가버린다. 남자는 절뚝절뚝 걸어가다가 교통사고 현장을 만났는데 조금 전 자신이 탔던 버스가 낭떠러지로 추락했다는 걸 알게 된다.





▲우시는 양쯔강 하류 일대가 다 그렇듯 물의 도시다. 모세혈관처럼 운하가 온 도시에 퍼져 있다.



와서 보니 중국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얘기들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냐고 되묻기도 한다. 이런 괴담 말고도 주위 사람들의 증언도 잇따른다. 차로 들이받아 쓰러진 사람의 가방을 빼앗아 달아나는 걸 봤다거나 식당에서 밥 먹고 있던 친척의 머리를 뒤에서 몽둥이로 내리쳤다든지…. 책에서도 이어진다. 호텔에서 밥 먹고 있는데 2층 창문으로 도둑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든지 택시운전사가 준 음료수를 마시고 깨어나 보니 대로변에 알몸으로 누워 있더라든지. 수치를 대는 사람도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상경한 농민공이 2억5000명쯤 되는데 이 중 일부(몇천만 명이다)가 부랑자로 전락해 외국인을 보면 매우 좋아한다는 얘기까지.



결국 가지 말라는 얘긴데 불안해서 직접 검색해 봤다. 자전거 여행을 하던 한국청년인데 친링(秦嶺)산맥을 가다가 칼을 차고 오토바이를 타고 온 강도 두 명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는 글이 진짜 있다. 그는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았다. 블로그를 쓴 걸 봐서는 많이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여행은 중단한 듯하다.



여행을 같이 가겠다고 한 지인이 있었다. 이 지인은 위급상황에 대비해 비상구조 비행기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중국에서 사업할 때 응급환자를 구조비행기로 후송한 적이 있다고 한다. 생각하는 규모가 다르구나 하면서도 속으로는 구조비행기를 띄우려면 전화부터 걸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도에게 잠깐 전화 한 통 하자고 양해를 구하는 일은 구조비행기를 띄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 텐데. 설령 통화가 된들 조종사가 발진해서 부근의 공항에 착륙하고 자동차로 달려왔을 때에는 이미 상황 끝일 터다.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다면 후송할 수는 있을 테니 터무니없는 계획이라고 반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합류하지 않았고 나는 중국 전화번호 하나에 목숨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 번호마저 문제가 생겼다. 내가 산 전화번호는 상하이 지역에서 쓰는 것이었다. 한국식으로 사고해서는 번번이 낭패다. 중국은 전국이 하나의 휴대전화 통화권인 나라의 크기가 아니다. 상하이 일대를 벗어나자 벌써 잔액이 떨어졌다고 한다. 안전의 최후보루인 휴대전화마저 불통되자 우시에서 서둘러 심을 새로 사고 전국통화용 번호를 받았다.



15261531251. 분명 한국과 똑같이 11자리인데 외워지지 않는다. 앞의 세 자리 152는 한국의 010처럼 통신사의 고유번호다. 이 고유번호는 130에서 189 사이에 3대 통신사를 다 합치면 29개나 된다. 0이 아니라 1로 시작한다. 0번은 한국도 그렇지만 장거리 지역번호의 앞자리다. 한국은 서울 번호가 02로 0 다음이 2여서 휴대전화가 01로 시작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베이징의 지역번호가 010이어서 할 수 없이 휴대전화는 1로 시작했을 것 같다. 이 점에서 무선전화가 생기기 전에 01을 남겨둔 체신부 시절의 이름 모를 과장님께 우리가 아홉 자리 또는 010이 대세니까 뒤 여덟 자리만 외우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



중국 휴대전화는 다 1로 시작한다 쳐도 두 번째부터 숫자를 외워야 하기 때문에 좀처럼 외워지지 않는 것. 내 번호를 기억하는 건 단념하고 두 개의 번호만 외웠다. 110과 122. 전자는 강도 신고전화, 후자는 교통사고 신고전화다. 물론 구조비행기와 마찬가지다. 전화할 때는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겨버린 이후다. 전화할 일이 없어야 한다.



우시에서 전장으로 가는 312국도는 주로 화물차들이 다녔다. 내륙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동쪽으로 이동하고 해안지역에서는 이 사람들을 고용해서 물건을 만든 뒤 화물차에 실어 내륙으로 보낸다. 사람과 물자의 흐름이 교행한다. 자동차를 몰고 도시 간 이동하는 사람은 적다. 312국도는 잡지 『중국국가여행』이 선정한 10대 자전거 노선에 포함되지만 아직 자전거 여행자는 더더욱 많지 않다. 마을을 벗어나면 도로 위에서는 삭막한 화물차의 행렬 외에 강도나 장기적출단은 물론 보행자조차 보기 힘들다.



그래서 나를 보고 신기해한다. 그냥 자전거가 아니라 가방을 4개나 매달고 가는 게 희한한가 보다.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르자 요리사, 종업원, 부근 차 정비소 직원 할 것 없이 모여든다.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에 깜짝 놀란다. 한국에 대한 인상들이 좋다. ‘한쥐(?)’라고 부르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드라마에서 걸어나온 사람처럼 대한다. 이 정도로 환대한다면 설령 강도라도 내게 호기심부터 갖지 않을까. 중국 여행의 불안감이 잦아든다.



하루 100㎞ 이상 주행은 의미가 있다. 60일 동안 4200㎞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하루 70㎞만 가면 되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하고 헤매는 거리를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에 강약 조절을 위해선 매일 100㎞ 이상 주행능력을 키워야 한다. 여행 전 연습량이 충분치 않았다. 출발 두 달 전 수서에 있는 집에서 과천까지 고작 38㎞를 다녀오고 나서 뻗어버렸다. 마라톤이나 수영 같은 다른 운동을 해왔지만 쓰는 근육이 다르다. 출발 전까지 하루 50㎞ 이상 타 본 적이 없다. 미국 횡단 때도 그랬으니까 여행 초반을 연습하는 과정으로 삼으면 되지 뭐. 그렇게 태평하게 생각했는데 엉덩이가 아팠다. 어깨에 멘 배낭도 살을 파고들었다. 바람도 역풍으로 바뀌고 번번이 길을 벗어났다.



80㎞를 달릴 무렵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난징(南京)에 사는 대학생이다. 여름에 쓰촨(四川)성의 청두(成都)에서 티베트의 라싸까지의 촨짱셴(川藏線) 주행에 도전하기 위해 상하이로 연습하고 돌아가는 길. 내가 가려다 포기한 촨짱셴이다. 중국 대학생들은 군대를 가지 않기 때문에 대학 시절 또는 졸업기념으로 멋진 일을 찾는데 촨짱셴이 가장 인기 있다. 동반자가 있으니 주행이 훨씬 쉽다. 앞장선 그 역시 312국도를 번번이 놓치곤 해서 흐뭇했다. 그렇지, 심지어 현지인들도 길을 잃는데….



그와 헤어지고 312국도에서 전장까지 들어가는 11㎞의 길은 다시 고통스러웠다. 속도계를 보니 이미 120㎞ 이상 달렸다. 나는 힘들면 숫자를 센다. 페달 네 번 밟을 때마다 하나, 둘, 이렇게 백까지 세고 다시 하나, 둘. 숫자를 외우는 동안 고통을 잠시 잊는다. 펄 벅 옛집은 시장통의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서 언덕 위에 있다. 골목의 입구도 분명치 않다. 다 와서 몇 번 헤맨 끝에 펄 벅 옛집에 다다르자 이미 해질 무렵이었다. 긴 숨을 내쉬고 고요한 옛집을 보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오랜 지적 여행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순례자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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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는 등 14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NHN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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