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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10> 국제적십자운동

중앙일보 2012.06.25 00:09 경제 13면 지면보기
강혜란 기자
최근 시리아 훌라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포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108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부상자를 치료하고 피해 주민 구호에 나선 이들이 시리아 적신월사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입니다. 세계 각국의 무력충돌 현장에 평화의 수호신처럼 등장하는 적십자(적신월)사와 ICRC. 이들이 어떤 단체인지, 국제적십자운동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시리아 참사 현장서 활약 적신월사, 적십자사와 뿌리 같아요

# 내년 창립 150주년 맞는 국제적십자위원회



“부상자 간호를 위해 열성적이고 헌신적이며 충분한 자격을 갖춘 자원봉사자들로 평시에 구호단체를 조직할 수는 없을까? (중략) 어쨌든 사람들이 진보나 문명에 대해 그처럼 자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대에도 불행히도 전쟁을 전적으로 피할 수는 없다. 인도주의와 진정한 문명 정신에 입각해 전쟁을 방지하거나 적어도 전쟁의 공포를 감소시키기 위해 애써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긴급한 일이 아니겠는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인도적 구호에는 식량·식수 등 생필품 보급이 포함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동남부 오보(OBO)지역 난민캠프에서 ICRC가 설치한 식수원에 물을 받으러 온 아이들. [오보=최승식 기자]


 1859년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젊은 사업가 장 앙리 뒤낭(Jean Henri Dunant·1828~1910)이 펴낸 책 『솔페리노의 회상』의 한 대목이다. 뒤낭은 이 책에서 그해 6월 24일 이탈리아 북부 솔페리노에서 벌어진 전투의 참상을 고발했다.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과 오스트리아군 사이에서 벌어진 솔페리노 전투에선 4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양측 군인 수천 명이 전장에 방치된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뒤낭은 책에서 두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전시 부상자를 돌볼 수 있는 간호사로 구성된 구호단체를 평시에 설립할 것과 둘째, 군 의료진을 돕기 위해 전장으로 차출될 자원봉사자들을 식별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국제적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뒤낭의 제안은 시대의 양심을 움직였다. 1863년 제네바공익협회라는 이름의 자선단체가 다섯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설립했다. 구스타브 므와니에, 기욤-앙리 디푸르, 루이 아피아, 테오도르 모느와르 그리고 뒤낭 자신이 포함된 5인 위원회다. 이들의 주도로 국제부상자구호위원회가 설립됐다. 이것이 나중에 국제적십자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ICRC)가 됐다. 이듬해(1864년)엔 12개 정부가 동참한 가운데 최초의 제네바 협약이 제정됐다. ‘육전에 있어서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제네바 협약’이란 명칭의 이 조약은 최초의 인도법 조약으로 기록된다.



# 십자가 상징 미묘한 갈등 … 적신월, 적수정으로 분화



ICRC의 창설자들은 활동 초기부터 단일하고 보편적이며 쉽게 식별할 수 있는 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장의 부상자뿐 아니라 그들을 구호하는 이들까지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표장을 보기만 해도 전투원들이 즉각 공격적 행동을 삼가고 존중할 것이 요구됐다.



 1863년 10월 26일 16개 국가와 4개 자선단체 대표단이 제네바에서 모였다. 이 회의에서 스위스 국기를 반대로 뒤집은, 흰색 바탕에 붉은색 십자가로 된 식별 표장이 채택됐다. 적십자(Red Cross·사진1)의 시작이다. 이 표장은 1년 후 외교회의에서 군 의무기관의 식별 표지로 공인됐다. 그해 제네바 협약이 채택되면서 인도법에 의해서도 재가됐다.



 하지만 십자가 상징은 종교적으로 미묘한 갈등을 불렀다. 1876년 오토만 제국은 적십자 대신 적신월(Red Crescent·사진2)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1929년 적신월은 이란의 적사자태양(현재 사용되지 않음)과 함께 공식 승인을 받았다.



 어떤 단체들은 적십자와 적신월 어느 쪽도 편치 않음을 호소했다. 둘 다 사용하길 원하는 단체도 있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2005년 12월 외교회의가 열렸다. 여기에서 제3 추가의정서를 채택함으로써 새로운 표장인 ‘적수정(Red Crystal·사진3)’이 탄생했다. 이 표장은 어떤 종교·문화·정치적 함의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에 국가와 각국 적십자사의 표장 사용에 융통성을 부여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187개 적십자 및 적신월사가 활동 중이다.



# 앙리 뒤낭 초대 노벨평화상 받아



오늘날 국제적십자운동을 구성하는 단체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각국 적십자사 및 적신월사다. ICRC와 IFRC는 국제활동기구다. ICRC는 무력충돌 지역에서, IFRC는 자연재해 현장에서 국제적십자운동 활동을 총괄한다. 각국 적십자사와 적신월사는 국내의 인도적 활동에 주력한다. 한국에는 대한적십자사가 있다.



 이 가운데 ICRC는 총회위원(15~25명)의 90%가 스위스 출신이다. 총회는 ICRC의 최고 정책의결기관으로, 위원은 4년마다 선출된다. 총회위원이 스위스 출신 명망가들 위주인 것은 ICRC가 앙리 뒤낭 등 스위스인들의 민간단체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제이콥 켈렌버거 현 총재를 비롯해 150년 남짓한 역사 중에 스위스인이 아닌 총재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ICRC는 그 임무나 법적 지위상 유엔 같은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와 구별된다. 대부분 국가에서 ICRC는 관계당국과 본부 협정을 맺는다. 무력충돌 발생 시 피해자를 보호·원조하는 역할을 위임받는 식이다. 이 근거가 되는 것이 1864년 최초의 제네바 협약을 계승한 1949년 4개 제네바 협약과 77년 2개의 추가의정서다. 국제법의 지배를 받는 정부 협정을 통해 ICRC는 일반적으로 국제기구에만 주어지는 특전과 면책을 부여받는다. 이런 특권과 면책에 힘입어 중립성과 독립성을 갖고 활동할 수 있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파견직원을 포함한 1만2000명의 ICRC 직원들이 활동 중이다. 국제적십자운동은 창시자 앙리 뒤낭이 초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ICRC가 1917년, 1944년, 1963년 등 세 차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 전쟁범죄자 심판할 국제형사재판소 2002년 설립



ICRC의 특수한 역할은 인도법의 다양한 조약을 통해 각국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무력충돌법 또는 전쟁법으로도 알려져 있는 전시 국제인도법은 적대행위에 참여하지 않거나 또는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게 목적이다. 정부와 군대뿐만 아니라 무장저항 집단 등 무력충돌 당사자 모두가 준수해야 한다.



 1949년 4개 제네바 협약은 국제적 무력충돌에 적용된다. 이 협약들은 민간인과 부상당했거나 체포된 전투원처럼 적대행위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는 이들이 해를 입지 않고 인도적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은 또한 ICRC가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수행해야 할 역할도 정하고 있다. 2009년 말까지 194개국 정부가 제네바 협약에 가입했다.



 77년 2개 추가의정서가 제네바 협약을 보강했다. 적대행위를 규제하는 규칙들을 강화함으로써 폭력 사용을 제한하고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2009년 말까지 제1의정서에는 169개국이, 제2의정서에는 165개국이 가입했다.



 무력충돌 당사자가 인도법을 위반하면 어떻게 될까. ICRC는 위반행위를 발견하면 책임 당국에 비공개로 접촉한다. 침해행위가 심각하고 반복적이며 증거가 확실한 상황이거나 비공개 항의로 소용없을 때 ICRC는 인도법 위반을 고발하는 입장을 공개 표명한다. 그러나 ICRC가 직접 위반행위를 기소하거나 조사하지는 않는다.



 제네바 협약 체결 당사국들은 국내법에 전쟁범죄자의 기소나 송환을 포함한 인도법 위반 억제 조항을 도입할 의무가 있다. 위반자들은 각국 정부의 국내 법정에 우선적으로 소환된다. 그러나 전쟁범죄자들이 국내 사법체계하에서 재판을 피할 경우 이를 심판할 국제기구 설립이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1998년 제정되고 2002년 7월 발효한 로마규정에 따라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ICC)가 설립됐다. 비록 위반자가 ICC에 회부되더라도 ICRC 직원들은 증거를 제시할 의무에서 배제된다. ICRC 활동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다.



# 1903년 대한제국 제네바 협약 가입



1919년 일제 치하에서 상해임시정부가 설립했던 대한적십자회 응급구호단. 적십자간호원 양성소에서 13명의 간호사가 배출됐다. [사진 대한적십자사]
한국의 적십자운동은 대한제국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3년 1월 8일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의 제네바 협약에 가입했다. 2년 뒤인 1905년 10월 27일, 고종황제 칙령(제47호)으로 대한적십자사 규칙이 제정·반포되면서 처음 설립됐다. 그러나 그해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 일본은 1909년 대한적십자사를 강제 폐사시켰다.



 일제 치하에서 상해임시정부는 1919년 8월 29일 임시정부 내무부 총장 안창호 명의로 대한적십자회 설립을 공포했다. 1920년에는 적십자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해 13명의 간호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의 대한적십자사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과 함께한다. 정부는 열악한 민생을 돕기 위한 긴급 대안으로 적십자사를 국가 차원에서 설치할 입법 작업을 추진했다. 49년 4월 30일 법률 제25호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공포됐다. 55년 5월 대한적십자사는 ICRC의 인가를 받고 그해 9월 IFRC의 회원국이 됐다.



 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대한적십자사는 의료구호 활동과 전쟁포로 교환 등 전시 인도주의 활동을 펼쳤다. 전후 56년에는 ICRC 협조 아래 납북인사의 안부탐지 활동을 벌여 337명의 생존자를 확인했다. 58년 납북 민항기 KNA의 승무원 송환업무도 주도했다. 같은 해 국립혈액원을 인수해 대한적십자사혈액원을 개원하고 헌혈운동의 기틀을 닦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대한적십자사는 구호활동·사회봉사·청소년적십자·남북교류·국제협력·병원사업 및 혈액사업·특수복지사업 등 12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이티 대지진, 파키스탄 홍수, 동일본 대지진 등 국제적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긴급구호 활동도 한다. 현재 한국에선 10만40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23만 명의 청소년적십자단원, 250만 명의 헌혈자, 대한적십자사의 3000여 직원이 적십자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북한 적십자회의 공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적십자회다. 1946년 10월 18일 창립돼 56년 ICRC의 인정을 받고, 그해 IFRC에도 가입했다. 1949년 제정된 제네바 협약에 가입한 것은 북한이 오히려 빠르다. 한국 정부는 66년, 북한은 57년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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