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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 女論] 춤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진수방

중앙일보 2012.06.25 00:56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진수방(陳壽芳·1921~95)은 경성의 의사 집안의 딸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춤에 남다른 재능과 취미를 보이던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의 승낙을 얻어 조택원(趙澤元)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녀의 춤에 대한 관심은 특정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황홀하게 하는 춤이라면 어떤 춤이든 배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일생 동안 조택원·한성준·이시이 바쿠(石井漠)·가와카미 스즈코(河上鈴子) 등 여러 스승 밑에서 조선 춤, 발레, 스페인 무용 등을 다양하게 익혔다.



 14세 때는 덴가쓰예술단(天勝座:전 세계를 돌며 곡예·무용·연극·가극 등을 공연하던 일본의 종합 공연예술단체)의 공연을 보고 매료돼 가출을 감행했다. 석 달 동안 무작정 그들을 따라다녔다. 이는 그녀의 춤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넓고도 뜨거웠는지 보여준다. “처음으로 보는 그들의 춤과 노래는 내 맘 전부를 빼앗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몰래 나는 이튿날도 사흗날도 거기에 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서울을 떠나던 날 나도 함께 떠나게 되었습니다.”(진수방, ‘반(半)의 반생기’, 여성, 1936.4)



 1940년 그녀는 아동무용과와 예술무용과를 둔 무용연구소를 세워 무용 대중화와 후배 양성에도 힘썼다. 50년대에는 한국무용가협회장으로 국립발레단의 창설을 역설해 한국 무용계의 발전과 예술로서의 기틀 확립에 이바지했다. 내부적 갈등으로 62년 국립무용단이 창설된 직후 무용단 임원직을 사퇴하기는 했으나 그러한 결실을 보기까지 그녀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후 진수방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말년을 보냈다. 그 때문인지 동시대의 여성 무용가인 배구자나 최승희에 비해 한국에는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녀의 춤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컸으며 한국 근대 무용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다른 이들이 나더러 ‘왜 춤을 추는 거냐’고 물으면 나는 그만 웃어버립니다. ‘왜 추긴 왜 춰요. 춤추고 싶어서 추는 것뿐이지요. 이유가 있나요?’ 정말이지 나는 나의 청춘을 여기에 바쳐왔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패배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힘을 다 바쳐서 춤추고 싶을 따름입니다. 춤에 임하는 태도는 오직 이것뿐입니다.”(진수방, ‘발레단과 그 운영-예술로서 존립하려면’, 조선일보, 1958.12.23)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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