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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CEO를 위한 조선왕조실록

중앙일보 2012.06.25 00:55 종합 32면 지면보기
정선구
산업부장
윤용로 외환은행장에겐 독특한 식사 습관이 있다. ‘거꾸로 식사법’이다. 한번은 그와 중식당에서 가벼운 코스 요리로 점심식사를 할 때다. 그는 이렇게 주문했다. “과일 디저트부터 주세요.” 신기한 듯 쳐다보자 씩 웃으며 하는 말. “나의 건강 필살기지.” 과일부터 먹으면 포만감이 생겨 소식하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황희 정승은 노년 때 늘 한쪽 눈을 감고 다녔다. 길을 걸을 때나 책을 볼 때나 외눈으로 지냈다. 다른 정승과 판서들이 의아해 하자 황희 정승 왈, “몸이 늙어 두 눈 모두 시력을 잃을까 봐서일세. 다른 쪽은 보호해야지. 나만의 건강법일세. 허허허.” 24년간 정승으로 있었고, 그중 19년을 영의정을 지내다 90세까지 장수한 비결이다.



 최고경영자(CEO)는 강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건강해야 한다. 지병이 있다면 철저한 관리가 필수다. 수양대군은 무인적 기질을 자랑하고 다녔다. 소맷자락을 남보다 크게 해 펄럭였다. 겨울이면 소매를 걷어 굵은 팔뚝을 뽐냈다. 일부러 둔한 말을 골라 타고는, 말이 휘청거리면 말에서 사뿐히 뛰어내리는 모습을 과시했다. 병약한 세자(문종)보다 자기가 낫다는 점을 아버지 세종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소갈증(당뇨)으로 고생한 세종도 한때 타구를 즐겼다. 긴 몽둥이로 조그마한 공을 쳐서 구멍에 넣는, 골프와 비슷한 경기다. 몽둥이는 숟가락 모양의 물소가죽 주걱에다가 대나무 자루를 이어 만들었고, 나무 공의 크기는 달걀만 했다.



 CEO의 강함에는 건강 외에 결단력이 필요하다. 진정한 강함이다. 밖으로 나타난 성품이 강하거나 부드러워도 내면의 강함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반도체의 산증인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온화한 사람이다. 그러나 단호한 결정이 삼성을 반도체에 강한 기업으로 일궜다. 그는 “차라리 초이스(선택)가 없는 게 낫다. 여러 가지를 벌이면 자신이 없다는 증거다. 여러 개 하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니까. 허름해도 1등 하는 거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여러 종류의 반도체를 두어 개로 단순화했다.



 LS그룹이 2007년 국제상사를 인수했을 때 구자열 LS전선 회장은 박재범 LS네트웍스 사장에게 소리쳤다. “이 친구야, 국제상사 인수를 왜 했나. 화끈하게 새로 하자는 거 아니냐.” 회장의 말에 박 사장은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수많은 종류의 운동화를 과감히 정리했다. 오로지 W(워킹화)와 R(런닝화)로만 갔다. 이게 대박을 쳤다. 박 사장은 “구 회장은 화통하면서 큰 그림 위주로 본다. 부친 구평회 회장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세조 13년인 1467년,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다. 함길도에선 사병 해체작업과 고을 수령 부자 승계 폐지에 불만이 쌓여갔는데, 대표적인 토호 이시애가 거병했다. 이시애 군은 강했다. 관군 선봉장 강순도 강하게 맞섰다. 치열한 공방이 오갔지만 관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지쳤고 화살은 떨어졌다. 일촉즉발의 위기. 그런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승리가 코앞인데 도저히 관군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판단한 이시애가 퇴각이라도 안전하게 하기 위해 휴전을 요구한 것이다. 결정적 오판이었다. 기뻐한 쪽은 관군이었다. 강순은 “만약 이를 어긴다면 모두 도륙하겠다”고 되레 으름장을 놓았다. 이후 반군은 동요했고 탈영병이 속출했다. 이시애는 자신의 실수를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유럽 위기가 심상치 않다. 진정세를 보이다가도 다시 불안감이 공습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형국이다. 그래서 CEO들은 좌불안석이다. 언제 위기가 없었던 적이 있었느냐마는 그래도 두렵다. 삼성은 그룹 넘버 투인 미래전략실장까지 강한 인물로 교체했다.



 이런 상황에선 강해야 한다. 몸이 강해야 하고, 마음이 강해야 한다. 일에 대한 열정만으론 안 된다. 강함이 열정을 압도해야 한다. 이리 휩쓸리고 저리 내몰리면 큰일이다. 중심 잡아 결단력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CEO는 위기 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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