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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김현희가 경멸한 ‘개싸움’

중앙일보 2012.06.25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현대사에서 잘 알려진 여자 스파이를 꼽자면 마타 하리와 김수임이다. 두 사람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총살 당한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그렇다고 삶까지 비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삶은 목적이 뚜렷했고 내용이 풍부했다. 그들은 돈이나 신념 또는 사랑에 몸을 던졌다.



 마타 하리는 네덜란드 출신 이혼녀였다. 그녀는 파리의 유명한 클럽 물랭 루즈에서 벨리 댄스를 추었다. 그녀는 미모와 고혹적인 몸매로 유럽의 고위층을 유혹했다. 마타 하리는 41세인 1917년 총살됐다. 독일의 돈을 받고 프랑스 군사정보를 빼낸 혐의였다. 일찍 죽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남자와 돈을 누렸다. 남한의 김수임은 일제 때 이화여전을 졸업한 인텔리였다. 그녀는 해방 후 북한 김일성 정권을 위해 스파이로 활동했다. 그녀는 공산주의자 이강국과 남조선노동당을 사랑했다. 김수임도 39세에 총살형으로 죽었다. 채 40년도 안 됐지만 그래도 그녀는 사랑과 신념 속에서 살다 갔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는 어찌 보면 훨씬 불쌍한 스파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돈도 사랑도 없었다. ‘남조선 해방’이라는 신념마저 북한의 속임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북한은 청춘을 가져가고 청산가리 앰풀을 주었다. 1987년 11월 그녀는 앰풀을 깨물었지만 살아났다. 그녀는 남한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강연과 수기(手記)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렸다. 인세 8억5000만원을 내놓으면서 유족에게 용서를 빌었다. 한동안은 모든 게 평화로웠다. 그녀는 그렇게 나머지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이번엔 남한이 그녀를 속였다.



  이상한 일은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1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11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인권위원회 신부들이 ‘김현희 의혹’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 사태가 커졌다. 아예 김현희는 가짜이며 정보기관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주장들이 나온 것이다. 운동권 신부들과 좌파 시민단체에 일부 유족까지 가세했다.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의혹을 부풀렸다. 급기야는 취재진이 김현희 집 현관에까지 들이닥쳤다. 바로 6년 전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이 자신의 아파트 현관 앞에서 북한 공작원의 총을 맞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방송사는 김현희의 집을 세상에 노출시킨 것이다. 그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음날 새벽 김현희는 아들들을 데리고 피신했다.



 노무현 정권 내내 김현희는 목숨을 걸고 버텼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그녀는 반격을 시작했다. 자신을 가짜로 몰아갔던 사람들을 세상에 고발한 것이다. 그녀는 북한 민주화 운동가 이동복씨, 10여 년 전 자신을 처음 인터뷰했던 조갑제 기자 그리고 김성호 국정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시민·종교 단체와 방송, 노무현의 정보기관이 자신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밝힌 것이다. 김현희는 최근 TV조선 대담 프로에 나와 모든 걸 다시 폭로했다.



  김현희는 ‘개싸움’이라는 표현을 썼다.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는 폭파 사건을 정확히 조사해 발표했다. 그런 사건을 노무현 정권이 국정원을 시켜 다시 조사하게 했으니 이는 “개싸움을 시킨 것”이라는 것이다. 김현희가 가장 분노하는 건 노무현 정권의 국정원이다. 국정원이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당당하게 대처하면 되는데 오히려 ‘가짜 몰이’에 편승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국정원이 자신에게 이민을 가라고 했다고 그녀는 분개했다.



  ‘개싸움’은 국정원만을 가리킨 게 아닐 것이다. 진실의 줄기보다는 의혹의 작은 잎사귀 몇 장을 흔들어댔던 좌파 단체·신부들, 북한에 이용당한 가녀린 여인을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사는 곳을 공개하고 이민을 종용했던 당국자와 방송사, 지금도 “김현희는 가짜”라고 외치는 운동가들…이 모든 무리가 벌였던 미망(迷妄)의 춤판을 그녀는 ‘개싸움’이라고 부른 것일 게다. 배신의 덫에 걸렸던 외로운 암사슴 김현희…그녀의 가쁜 숨이 대한민국의 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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