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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칼럼] 가치외교와 키신저의 충고

중앙일보 2012.06.25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유신 선포 이후 서울의 정치 상황이 험악해지던 1974년 1월 25일,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집무실에서 긴급 참모회의가 열렸다. 필립 하비브 주한 미 대사의 모두발언은 긴박했다.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시민 저항이 거세지고 있어 그대로 방치하면 정치적 불안이 고조될 뿐 아니라 반미 감정을 촉발할 우려가 있으며, 이를 틈타 북한이 모험주의적인 군사행동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그는 한국의 내정에 개입해 박 정권을 교체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키신저의 반응은 달랐다. “압제정부의 편을 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꾸려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못 박은 그는 “다른 나라, 특히 동맹국 국내정치를 재편하려는 국무부의 관행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한국에) 설득하는 것보다 중요한 과제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며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한국의 국내 정세와 관련해 어떤 압력도 가해선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value)의 확산을 중시하는 윌슨식 이상주의와 미국의 국익에 방점을 두는 현실주의 정치(Realpolitik). 하비브와 키신저의 짧은 논쟁에 담긴 심오한 정치철학적 배경이다. 미국은 곧잘 윌슨적 수사학을 동원해가며 외교정책 목표를 포장하곤 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실제 정책은 국익을 흔들리지 않는 기준으로 삼아 운용해 왔다.



 워싱턴이 이 기본자세를 잊고 이른바 ‘가치 외교’에 과도하게 집착할 때마다 미국의 국익은 항상 치명적 손실을 입어야 했다. 70년대 후반 카터의 인권외교가 그랬고, 네오콘의 ‘도덕적 절대주의’에 기초한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 외교정책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불길하다. 이명박 정부가 줄곧 강조해온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말 때문이다. 6월 15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문제협의회(WAC)에서 행한 정책연설을 통해 ‘가치동맹’의 중요성을 재차 부각했다. “냉철한 국익 계산에 입각한 동맹보다는 공유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 동맹이 보다 호혜적이고 영속적일 것이다.” “포괄적 동맹으로서의 한·미 동맹은 분명 더 많은 관심과 자원, 어려운 결정을 수반”하게 될 테지만, 이는 “한·미 동맹의 진전에 따르는 당연한 비용으로 우리는 기꺼이 이를 지불할 것이다.” MB정부 출범 이후 거듭돼온 역설(力說)의 결정판이다.



 동맹이 왜 필요한가. 공동의 적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생존을 위협하는 적을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때 이익을 공유하는 나라와 협력해 맞서는 것이다. 동맹은 생존이라는 국가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고, 따라서 국익이 변하면 동맹의 성격도 변할 수밖에 없다.



 “외교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오로지 국익만이 있을 뿐”이라는 국제정치의 격언도 있지 않은가. 가치는 국익에 우선할 수 없고, 가치를 이유로 동맹을 영속적인 존재로 묶어둘 수도 없다. 동맹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나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공동의 적과 위협을 부단히 재생산해야 하는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더 곤란한 문제가 있다. 가치는 다원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보편적 가치라고 믿지만, 동의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다른 가치’를 믿는 중국이나 이슬람 국가들, 북한 같은 나라들을 공동의 적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중세 십자군을 연상케 하는 그러한 외교가 과연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 어쩌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동양적 가치가 훨씬 현명한 선택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유엔을 비롯한 다양한 다자협력기구를 외면하고 미국과의 양자동맹을 통해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한·미 동맹의 외연을 시리아 대학살과 기후변화 대응까지 넓혀나갈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과연 무엇인가. 장차 가치동맹이 내밀게 될 청구서를 한국 국민들은 기꺼이 부담할 용의가 있을까. 티파티 같은 극단적인 정치세력이 미국 정치를 주도하며 맹목적 가치외교를 펴나가게 되면, 한국이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을까.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확산하는 일은 물론 소중한 과제다. 그러나 우리에게 보다 시급한 것은 전쟁을 예방하고 주변국과의 평화를 구축하는 현실정치 외교일 것이다. 6·25전쟁 62주년 아침, “국익을 먼저 생각하라”는 키신저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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