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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후진타오 노골적 러브콜 … 카르자이, 누구 손 잡을까

중앙일보 2012.06.23 01:04 종합 20면 지면보기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철수가 가시화하면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아프간의 ‘홀로 서기’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 도중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는 카르자이 대통령. [카불 로이터=뉴시스]

[세계 속으로] 발 빼는 미군, 아프간 운명은



#1. 6월 7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열린 중국 베이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별도의 정상회담을 했다. 푸틴은 “양국이 소련 시절 마련했던 협력관계의 회복과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도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아프간군 전력 강화에도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2. 6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SCO 정상회의 폐막 뒤 카르자이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의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을 선언했다. 또 아프간에 올해 1억5000만 위안(약 276억원)의 원조를 제공, 평화적 재건을 돕기로 했다. 후 주석은 카르자이를 ‘오랜 친구’라고 불렀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해 아프간은 SCO 정상회의에 옵서버 국가로 가입했다.





#3. 5월 21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시카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14년까지 9만 명에 이르는 전투병력을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치안권을 아프간 정부에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앞서 오바마는 카르자이와 한 시간에 걸쳐 단독회담을 하는 ‘성의’를 보였다. 파키스탄의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과 눈길 한번 나누지 않은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태도였다.



하미드 카르자이(55)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내로라하는 대국의 정상들이 그에게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군과 나토군의 철수로 생길 공백을 노리고 있고, 미국은 철군 이후에도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 한다. 중동과 인도, 중앙아시아의 세력이 서로 만나는 아프간이야말로 오랫동안 동서문명의 교차지 역할을 해온 통상과 군사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두고 미 폭스뉴스는 “플레이어만 바뀌었을 뿐, 아프간에서의 ‘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계속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더 그레이트 게임은 19~20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을 두고 벌인 전략적 경쟁을 뜻한다. 제국주의 시기 대영제국은 인도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제정러시아는 영토 확장을 위해 아프간에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격렬한 풀뿌리 저항으로 어느 나라도 아프간에서 오랫동안 세력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아프간은 ‘제국의 무덤’이었다. 21세기의 새로운 더 그레이트 게임에서 카르자이는 어느 나라에 선물을 주고, 어느 나라를 제국의 무덤에 묻을지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



 

이런 급변 정세에 직면한 카르자이는 겉으로는 의연한 척하고 있다. 그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병력의 철수는 2013년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6개월 안에 아프간군이 치안권의 75%를 책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타임은 “용감한 말이긴 하지만, 선택권을 그가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비꼬았다. 또 “이제 그는 조수석에서 내려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며 “이것이 카르자이에게는 최고의 시험(ultimate test)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카르자이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탈레반 저항세력이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탈레반은 아프간 북부와 동부에서 확고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공교롭게 이들 지역은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을 다스릴 때도 장악하지 못했던 곳이다. 지난해 탈레반 등과의 충돌로 인해 숨진 민간인은 5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사망자만 3021명. 카르자이는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을 확신하지만, 탈레반은 공공연히 “카르자이식의 접근에는 관심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10월까지 숙련된 병력 19만5000명과 경찰 15만7000명을 확보하는 것이 아프간 정부의 목표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할지는 불확실하다. 아직 초기단계일 뿐이다.



 또 다른 문제는 미군과 나토군의 철수로 치안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들의 철군은 곧 아프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나 다름없었던 전시 재정 지원과 원조의 중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철군과 동시에 탈레반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불안감도 팽배하다. 지난해 한 해에만 3만 명에 이르는 아프간인이 해외 망명을 신청했다. 아프간 중앙은행은 지난해 현금 46억 달러가 국외로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이는 아프간의 한 해 예산인 48억 달러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물론 이를 카르자이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는 탈레반 정권 붕괴 직후인 2001년 12월 독일 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6개월 동안 과도정부를 이끌 임시 지도자로 지명됐다. 공식적 이유는 탈레반 축출에 기여한 공로였지만, 사실 이는 서방세계가 이해관계의 공통분모가 가장 적고 공격적 성향이 덜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리더십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실제로 당시 내각 명단은 이미 확정돼 있었고, 카르자이에게는 이들을 해임하거나 지시를 내릴 권한도 없었다.



 카르자이는 이듬해 아프간 카불에서 열린 로야 지르가(대의회 혹은 대부족장회의)에서 2년 임기의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임명됐다. 이후 2004년과 2009년 대선에서 잇따라 당선됐지만,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각 부족의 세(勢) 구도가 자리잡힌 상황에서 그가 부패와 세력다툼 등을 뿌리 뽑을 강제력을 확보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도 카불 이외 지역에 그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두고 그를 ‘카불시장’이라고 조롱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특히 2009년 득표율 조작 등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며 카르자이는 신뢰성에 큰 타격을 받았다. 카르자이가 당선 직후 24명의 내각 명단을 의회에 제출했는데 의회는 “경쟁력이 없다” “뇌물을 써 선택됐다” 등의 이유로 두 차례나 상당수 후보에게 퇴짜를 놨을 정도다.



 보안을 이유로 국민과의 접촉을 차단한 것 역시 카르자이가 현실감각을 잃는 계기가 됐다. 아프간의 지도자가 된 뒤 알려진 암살 시도만 다섯 차례. 방법도 로켓포 공격, 총격, 폭탄테러 등으로 다양했다. 카르자이가 마지막으로 카불 시내를 직접 걸어서 돌아본 것은 7년 전이다. 타임은 그를 ‘대통령궁에 갇힌 죄수’라고 표현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전문가인 아메드 라시드는 “카르자이는 문제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조국에 최선이 무엇인지 큰 그림은 보지 못한 채 자신과 가족, 정권의 생존만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결함들도 그가 아프간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의 키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특히 카르자이는 자생적인 정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아프간에서 뛰어난 정치·외교력을 발휘, 외세의 도움으로 지도자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는 이에 항거하는 무자히딘 조직을 위한 기금을 모았다. 당시 카르자이는 무자히딘을 지원하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연락책을 맡았다.



 한때 카르자이는 탈레반 정권을 합법적 정부로 인정했고, 탈레반 쪽에서는 그에게 대사직을 제의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인도에서 유학한 덕에 영어·프랑스어·힌두어·페르시아어 등 여러 언어에 유창했던 것도 도움이 됐다. 파키스탄에서 반(反)탈레반 활동을 벌이던 2001년 10월에는 동료 3명만 이끌고 모터바이크 2대로 아프간 국경을 넘었을 만큼 배짱도 있다.



 왕족 가문 출신인 그의 권력욕도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그는 2002년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도 왕족의 대관식을 재연했다. 그의 동생은 한술 더 떠 아프간을 ‘왕이 다스리는 나라’, 자신을 ‘왕의 형제’라고 일컫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가 2014년 법에 따라 다시 대통령직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해도 이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리에서는 물러나도 대리인을 앞세워 권력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차기 권력과 재산을 둘러싼 카르자이 형제들 사이의 다툼으로 음해와 암살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2014년 대선은 카르자이와 아프간이 ‘홀로서기’에 성공했는지 판단하는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내정이 안정된 상태에서 사실상 첫 민주적 권력이양에 성공할 것이냐는 게 관건이다. 이에 대해 타임은 “카르자이가 역사적 위인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푸틴의 뒤를 따르지 않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임은 동시에 “결국 문제는 카르자이가 그렇게 할 인물이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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