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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젊음의 항변, 우리도 부모 품서 나오고 싶다

중앙일보 2012.06.23 00:26 종합 34면 지면보기

벼랑 끝의 20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다. 하지만 단순한 성장통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문제다. 지구촌 곳곳에서 20대들의 절규가 들려온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세기의 키워드가 ‘부와 가난’이었다면 21세기의 키워드는 ‘영(young) & 올드(old)’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먹고 먹히는 세대의 갈등과 충돌의 양상을 보여주는 신간을 집중 리뷰했다. 주로 미국의 상황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한국 사회도 강 건너 불구경 할 처지가 아니다.



20대=독립은 끝났다!

리처드 세터스텐·바버라 E 레이 지음

이경남 옮김, 에코의서재

372쪽, 2만원




‘요즘 젊은 것들’이 기특하기는 힘들다.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고정관념이다. 그런데 이 젊은 것들이 어른의 문턱을 넘어선 뒤에도 기성세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부모의 등을 치고 있다면 못마땅한 정도가 아니라 ‘몹쓸’ 부류로 비난받기 쉽다.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에게 의존해 사는 캥거루족,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세대인 트윅스터(twixters)족이 ‘발육부진의 피터팬’이라며 도마 위에 오르는 건 ‘성인=독립’이라는 등식에 사로잡힌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20대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취업과 연애, 결혼 모두 어렵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공부했다면 짐은 더 커진다. 사진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티끌 모아 로맨스’에서 청년 백수로 나온 천지웅(송중기)의 모습. 지웅은 매번 취업에 실패하고 엄마에게서 받던 용돈도 끊기고 연애사업도 못하는 찌질한 청춘이다. [일러스트=강일구]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20대에 독립해야 한다’는 건 세상 물정 모르는 고래적 케케묵은 소리라고 강변한다. 각 분야의 연구진 12명이 지난 8년간 19~34세 미국 젊은이 50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책은 20대의 입장에서 쓴, 20대를 대변하는, 기성세대를 향한 반격서다.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오늘을 사는 미국의 20대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더 처절하게 발버둥쳐도 그들보다 더 잘살기 어려운 세대”다. 중산층의 두께가 점점 얇아지고 있어서다. 저축률 급락에 따른 투자 감소로 실질 임금이 제자리 걸음인데다, 제조업이 위축되면서 고임금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고용불안이 큰 서비스업은 팽창하고, 세계화 시대를 맞아 일자리를 둘러싼 전지구적 경쟁이 본격화하는 탓이다.



 승자독식으로 치닫는 팍팍한 사회 분위기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청춘에 허락됐던 시행착오는 낭만적 구문이다. 백척간두에 올라앉은 청춘에게 실수는 낭떠러지 행을 뜻한다. 저자는 “서둘러 어줍지 않게 어른 흉내를 내는 건 의미도 없고 위험만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니 ‘발육부진 피터팬’이란 비난은 억울하다. 미성년과 성년 사이의 틈새(gap) 기간이 10년 이상 길어진 요즘 ‘품 안의 다 큰 자식(in-house adulthood)’이라는 새로운 발달단계를 인정하자고 제안한다. 곳곳이 지뢰밭인 세상에 나가기 전 20대에게 ‘완전 군장’이 필요한 만큼 준비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극성스러운 부모의 대명사인 ‘헬리콥터 부모’는 오히려 오케이다. 피 튀기는 전장에서 노련한 조타수가 필요해서다. 실수를 거름 삼아 교훈을 배우라는 건 한가한 이야기로, 부모의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20대의 발육부진을 변호하고 나선 데는 20대가 디디고 선 지반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것이 기성세대여서다. 흥청망청 돈을 써대며 가정과 국가의 곳간을 비워낸 기성세대가 저지른 일의 ‘독박’을 썼기 때문이다. ‘다 자라지 못한 성인’은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사회의 경고등이라는 말이 이해되는 이유다.



 기성세대는 노동시장의 문턱도 높였다. 높인 정도가 아니라 견고한 성채를 쌓고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고령층이 일을 놓지 않은 탓에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불리한 건 젊은층이다. 신병의 패기가 높다 해도 베테랑을 당해내기는 만만치 않아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20대는 성인의 필수코스 중 하나인 결혼에도 접근하지 못한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가 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에게 평범한 꿈이었던 중산층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20대에게는 갈수록 좁아진다. 그럼에도 그 입구에 이르기 위해 교육이라는 사다리에 매달린다. 교육이란 무한경쟁에서도 부상병은 속출한다. 학자금 대출의 덫에 허덕대고, 고학력 실업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직장을 구해도 20대의 고달픔은 끝나지 않는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 근로자는 더 이상 회사형 인간일 수 없다. 20대가 금전적 보상이나 개인적 보상에 연연하고, 애사심이 없고 냉소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기성세대의 비판은 속 모르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순 없다. ‘새로운 교전수칙’을 써야 할 때다. 저자들은 “성인의 새로운 이정표는 독립이 아니라 유대”라고 했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불평등이 심화하고,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상황에서는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소셜네트워크는 사회적 계급을 뛰어넘어 성인으로 연착륙할 길을 열어준다. 청춘이 성인의 문턱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사회적 동물’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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