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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로그아웃 안 되는 스펙 쌓기 게임

중앙일보 2012.06.23 00:00 종합 41면 지면보기
이재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취업할 때가 되다 보니 스펙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토익 점수와 학점, 그리고 인턴 경력까지 장착해야 ‘취업 사냥터’에 뛰어들 수 있는 분위기다. 게임에서는 끝없는 ‘노가다’로 레벨을 올리는 것처럼 취업에서도 일련의 준비 과정들은 지루하면서도 고되다. 일단 기준을 충족해도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누가 먼저 사냥을 해서 승자가 되느냐의 문제다. 안타깝게도 유저들은 많고 몬스터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 사냥터는 언제나 만원이다. 넉넉한 줄 알고 들어왔는데 이게 뭔가. 스펙 쌓겠다고 쏟았던 시간들이 한낱 모래성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불필요한 스펙 경쟁이 소모전으로 치달은 결과다. ‘스펙 광풍(狂風)’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정작 무엇 때문에 스펙을 쌓는지는 어느 누구도 잘 모른다. 지원자들은 단지 이렇게라도 해야 취업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공허한 믿음만 붙잡고 있다. 기업과 자신을 매치할 무언가를 도통 알 길이 없다. 그러니 결국 겉으로 보이는 스펙에 더욱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인턴십 인터넷 경매까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 베르사체 인턴십은 5000달러, 보그 편집장과 함께하는 1주일 인턴십은 4만2500달러에 낙찰됐다. 아이템을 현금거래 하듯이 그야말로 스펙도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취업 스펙을 쌓는 데 투입하는 비용이 1인당 평균 4269만원이라고 한다. 불안하기에 쏟아붓고 돌파구를 찾아보려 쏟아붓지만 여전히 취업은 쉽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이 투입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취업 및 채용 구조 개선을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 스펙에 가려진 지원자의 면모를 기업들은 알고 싶어 하지 않나. 결국 기업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스펙보다는 소질 및 실무능력 등을 파악할수 있는 채용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게임은 로그아웃이라도 할 수 있다. 재미없고, 힘든 게임을 계속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취업은 다르다. 청춘에게 있어 나갈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생존의 문제다. 스펙으로 포장된 ‘캐릭터’가 과연 진정으로 자신을 대변하는 것일까. 결국 소모적인 잣대로 불필요한 낭비만 부추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미국의 퍼듀대학에서는 매년 루브 골드버그 콘테스트라는 기묘한 대회가 열린다. 콘테스트에선 창문을 닫거나, 신발을 신는 등 일상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행위들을 복잡하게 처리하는 기계들이 등장한다. 쉬운 동작을 가장 어렵게 재연한 사람이 결국 1등이 된다. 얻고자 하는 결과는 간단한데, 투입되는 노력은 이상하리만큼 비효율적인 사람이 승자다. 스펙이 결국 개인에게 매겨지는 잣대가 돼버린 요즘, 결국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인재는 ‘루브 골드버그 콘테스트’의 1등과 같은 인재와 다를 바 없다. 사냥터는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며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청춘도 많다. 오늘도 청춘들은 새로운 사냥터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원서를 쓰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불안해하며.



이재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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