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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내게 맞는 속도로 삶을 걸어갈 때 안달하며 흘리는 마음의 땀 식어

중앙일보 2012.06.22 04:30 11면 지면보기
천안시사회복지협의
박광순 회장
곧 닥쳐올 더위로 힘들게 싸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땀이 난다. 오십 줄에 들어선 나이,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 시원찮은 사업, 퇴행성으로 치닫는 몸, 갑자기 늘어난 스트레스 때문일까 하고 반문한다. 문득 내 마음에도 땀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마음이 더워지는 까닭은, 자기 자신의 리듬에 맞추지 못하고 남이 타고 가는 기차를 얻어 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유가 아닌 더 빠른 것을 원하기에 마음보자기에 불안·초조·근심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빠르게 걷느냐 보단, 내게 어울리는 속도가 얼마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나에게 어울리는 속도란 어떤 것 일까. 회의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장대비가 쏟는다. 목발 질이 서툴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들판의 나무며 식물처럼 꼼짝 못하고 비를 맞았다. 얼굴과 머리는 물론 등줄기와 속옷까지 척척하게 젖어오는 느낌이 참 싫었다. 같은 학년, 같은 반의 가방을 들어주는 동생도 양손에는 책가방이 들려져 우산을 들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혹 우산이 있다 하더라도 둘이서 쏟아지는 비를 피하며 십리 길을 걷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기억을 담고 있기에 비가 흠씬 내려도 마음에선 땀이 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비가 내 안으로 들어 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거친 마음을 흠뻑 적시며 ‘기다리는, 맞고 싶은’ 비가 돼 있었다. 이는 아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가 됐기 때문이리라. 빗줄기가 약해져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막아낼 준비를 할 수 없던 형편에서 조금은 수가 생겼다는 뜻일 게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양쪽 겨드랑이에 낀 목발 중, 오른손으로 우산을 잡고 느리게라도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길 수 있다. 왼쪽 팔에 장애가 있어 먼 곳 까지는 어렵지만 그래도 우산을 탄탄하게 붙잡고 발걸음을 뛴다는 것이다. 내가 원해서 비를 맞는 것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싫어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르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된 때부터는 마음에 땀이 차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을 산다는 것은 결국 내게 맞는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속도가 다 다를 것이다. 그러기에 남들이 얼마나 빠르게 걷느냐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누구나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가 있다. 비록 목발을 짚으며, 우산을 쓰고 걷는 느린 걸음이지만 그 걸음이 마음의 땀을 걷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그 비를 기꺼이 내 안으로 맞아 자유해진 것처럼 내가 감당할 속도인 느림이 몸의 일부분이 되게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 그래야 다가올 푹푹 찌는 여름, 땀을 덜 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햇살에 빨래를 널 듯, 땀이 그득해 눅눅해진 마음에 해를 비춰야겠다.



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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