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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추억이 된 강원산골 ‘스위치백’ 기찻길

중앙일보 2012.06.22 03:15 Week& 6면 지면보기
손민호 기자
20년도 넘은 일이다. 혈기방장했던 스무 살 시절, 들끓는 피를 감당하지 못하던 청춘은 무작정 기차를 잡아타고 전국을 떠돌았다. 집 나온 지 열흘쯤 지난 어느 밤. 강원도 어느 간이역에서 완행열차에 올라탄 청춘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기차가 둔중한 굉음을 내며 멈춰섰다. 그리고 기차는 갑자기 후진을 시작했다. 몇 시간째 이어지던 관성이 깨지는 찰나, 노독에 찌들었던 육신도 번쩍 잠에서 깼다. 차창 밖은 깜깜했고, 객차 안은 평온했다. 그러나 기차는 분명히 거꾸로 가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이번엔 기차가 원래 방향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차는 경적을 울리고 속력을 냈다. 영문도 모르겠고, 꿈인지 생시인지도 헷갈렸다. 그러나 지친 청춘은 이내 잠이 들었다.



그 밤의 경험이 이른바 스위치백 구간을 통과하던 순간이란 걸 깨달은 건 한참 지난 뒤 일이다. 교과서에서나 읽었던 스위치백 구간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첫 순간은, 그렇게 난데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겸연쩍은 기억이다.



여행기자로서 처음 스위치백 구간을 취재했던 건 2010년이다. 50년 가까이 이 가파른 산기슭을 따라 열차가 다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눈앞에서 기차가 톱질을 하듯이 Z자 형의 철길을 따라 오르내리고 있는데도 선뜻 믿어지지가 않았다. 스위치백 구간은 그만큼 현실감이 없었다.



그래, 우리네 삶이 이렇게 절박했다. 이렇게라도 기차가 다녀 강원도 깊은 산 속의 석탄을 부지런히 퍼 날라야 했다. 꼬리에 객차를 줄줄이 달고 비틀대며 산을 기어오르는 낡은 기차를 보며, 줄줄이 딸린 자식 먹이려 새벽마다 일을 나가는 아비의 구부정한 등을 생각했다.



이 스위치백 구간이 오는 26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7일부터는 스위치백 구간으로 불리는 영동선 통리~도계 16.5㎞가 폐선 처리되고, 새로 놓인 번듯한 새 철로를 따라 열차가 달린다. 새 구간도 가파른 경사 때문에 특이 시설이 들어선다. 국내 최장 길이의 나선형 터널 솔안터널이다. 커다란 나선형 원을 그리는 1.6㎞ 길이의 터널을 기차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통과한다.



스위치백 구간에는 이태 뒤 기차 테마파크가 들어선다. 하이원리조트가 500억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기차 테마파크를 건설할 계획이다. 레일바이크, 증기 기관차, 기차 펜션, 와인 터널 따위가 들어선다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영업 중인 기차를 테마로 삼은 놀이기구와 관광시설을 죄다 베낀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흉물처럼 내팽개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 싶다.



스위치백 구간은, 모두가 배 곯던 시절의 설움이 어린 장소다. 앞으로 문을 열 기차 테마파크가 되바라진 관광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네 애환도 어루만지는 치유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기차가 추억이면, 스위치백 구간은 가장 시린 추억이어서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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