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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14) 시인·건축가 함성호의 일산 소소재(素昭齋)

중앙일보 2012.06.22 03:15 Week& 11면 지면보기
시인 함성호가 1층에서 3층까지 연결된 일산 ‘소소재’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고래 뱃속에 든 요나처럼. 하늘과 땅의 기운을 연결하는 우주뱀처럼!
집 한가운데로 계단이 빙빙 돌고 있다. 1층에서 4층 옥상까지 뻥 뚫린 공간으로 공기가 위쪽으로 주욱 빨려들었다. 그래서 나선형 계단은 흡사 바람개비 같았다. 실제로 바람이 만들어져 계단을 오르는 내 치마가 펄럭펄럭했다. 좀 낯설고 좀 거칠었다. 집주인은 시인 함성호(49), 설계자는 건축가 함성호! 시인이면서 건축가인 친구가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설계했고 거기에 각종 실험이 진행됐다는 말을 듣고 흥미가 동해 찾아간 길이었다. 그가 조선건축물에 대해 쓴 짧은 글은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건축과 문학’이란 제목의 강연에선 동서와 고금을 꿰뚫으며 시간과 공간에 관한 성찰을 토해놓더란 소문도 들었다. 집의 본질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것이 분명한 함성호는 자신의 집을 어떻게 지었을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신의 성리학적 이상을 몸담고 사는 집에다 구현했다. 담양 소쇄원은 그걸 만든 양사헌의 자연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원림이다.


집 가운데 뻥 뚫어 쌓은 나선형 계단
바람·소리·사람 오가는 소통의 길

어떤 집을 지으려 했느냐는 첫째 질문에 함성호는 ‘시니컬’하게, 아니 ‘프로페셔널’하게 비켜갔다. “남의 집을 짓다 보니 정작 나는 짓고 싶은 집이란 게 없던데요. 그저 실험을 해볼 생각 밖엔! 남의 집으로는 실험을 해볼 수가 없잖아요?” 하긴 집이란 게 어디 한두 푼 하는 물건인가. 그러니 함부로 실험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다.



함성호가 이 집에서 실험한 건 대강 다섯 가지쯤 된다. 첫 번째가 소리길과 바람길을 만드는 것. 그것이 중심의 나선형 계단이다. 과연 아래쪽 소리가 위쪽으로 잘도 올라왔다. 전원주택이었으면 새소리·물소리였을 텐데 주택가와 상가가 섞인 지역이라 행상들의 외침소리가 증폭돼 들려오는 게 흠일 뿐. 대신 바람의 증폭만은 꽤 성공적이다. 나도 잠깐 앉아본 함성호의 자그마한 작업실에선 줄곧 누가 부채질이라도 하듯 바람이 불었다. 따로 선풍기 따위가 필요치 않을 자연대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둘째가 단열. 일반 단열재의 두께가 30㎜씩이나 돼 공간을 잡아먹는 것을 막으려고 우주선에 쓰인다는 초경박 0.5㎜ 알루미늄 단열재를 썼다. 결과는? 실패였다! 단열이 안 돼 겨울이면 벽에서 바람이 숭숭 나온다. 아내인 시인 김소연(45)이 겨울이면 딴 곳으로 피신을 가야 할 정도로 실내가 춥다. 그러나 이것도 제 집에서 실패를 해봐야 남의 집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니 완전 실패라고는 할 수 없다.



셋째는 노출 콘크리트 위에 찍는 무늬! 건축비를 적게 들이려고 건물 외벽은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붓고 목재를 붙여 무늬를 찍는 노출콘크리트 기법을 썼다. 그 목재를 뭘로 쓸지 선택하기 위해 소나무·나왕·낙우송을 두루 사용해봤다. 그 결과 가장 아름답고 선명한 결을 가진 놈은 낙우송이란 걸 알게 됐다.



2 작업실에서 침실로 통하는 복도. 문 없이 연결된 공간으로 벽에 책장이 있는 작은 서재이기도 하다. 3 소소재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주방과 식탁. 창밖 베란다엔 시인의 장모님이 고추와 오이와 상추를 기르는 텃밭이 있다.
넷째는 문을 없애는 시도. 공간을 가로막지 않고 서로 완전히 터놓고 싶었다. 실내 공기가 한 군데에 정체되지 않고 집안 전체로 소통하길 원했다. 이 집 구조는 실험적이라면 실험적이고 장난스럽다면 장난스럽다. 실내공간은 가운데 계단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빙빙 돌아가며 복도처럼 나 있다. 방이 아니라 길 같다. 길이 꺾여 넓어지는 귀퉁이 부분에 침실이 있고 작업실이 있다. 폭이 너른 쪽 길에는 부엌과 큰방(김소연의 부모님이 쓰신다)이 놓였고 큰방과 침실 사이의 북쪽 복도로는 화장실과 드레스룸을 뒀다. 부부 공간인 침실과 작업실은 문 없이 길쭉한 복도로 연결돼 있다. 두 공간은 계절에 따라 역할이 바뀐다. 겨울엔 침실이 남쪽으로 여름엔 작업실이 남쪽으로! (함성호는 전형적인 ‘소호(SOHO·Small Office Home Office)족’으로, 현재 집을 건축사무실 ‘EON’의 작업실로도 쓰고 있다.)



다섯째는 집을 나무처럼 짓고 싶다는 시도였다. 그래서인지 집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텅 빈 공간이 우주 기운이 오르내리는 나무의 물관부 같기도 하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땅과 하늘을 잇는 우주사(宇宙巳)쯤 되려나. 집 짓기 전에 그는 우선 볕 잘 드는 곳에 나무심을 자리부터 정했다. 나무에게 자리를 내어주느라 정작 건물이 앉을 자리는 울퉁불퉁해졌다. 집을 완성하는 것은 나무라고 생각했기에 실내공간보다 나무 앉을 자리가 중요했다. 그래서 네모 반듯한 집을 짓지 못했다. 아니 반듯한 것은 함성호가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소소재(素昭齋)에 직각으로 딱 떨어지는 공간은 없다. 그런 건 자연스럽지 않아서 싫다.



“어째서 소소재죠?” “아내 이름에서 흴 소자를 따고 거기에 비칠 소자 하나를 더 넣었죠.”



집 이름처럼 소소재는 그가 아내를 위해 지은 집이다. 그는 어느 글에서 사랑이 집을 짓는다고 썼다. “부자들은 집을 안 지어요. 그 돈으로 다른 돈이 나올 똑똑한 곳에다 투자를 하지요. 내 경험으론 돈을 쌓아두고 집을 짓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다들 빚을 내서 짓지요. 엄청난 삶의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집을 지을 수 있거든요. 다들 누군가를 위해, 사랑 때문에 하는 일이지요.”



먼저 나무 심을 자리를 비워두느라 바닥면적이 줄어들게 된 소소재의 외관. 이름처럼 소박하고 환하다.
사실 소소재의 핵심은 3층 살림집이 아니라 1층 어린이 도서관이다. 2007년 집 지을 당시 아내 김소연은 ‘웃는 책’이란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 중이었다. 무료로 책을 보거나 빌려가는 곳이었고 수입이래야 작은 강좌를 통해 얻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느 날 건물주인이 세를 20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통보했어요. 그때 내가 무심코 내놓은 반응이 사단을 만든 거지요. ‘아니 그 돈이면 은행융자를 내서 집을 짓고 임대료를 은행에다 내는 게 낫겠다!’”



아내가 그 말에 ‘혹’했으므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가지고 있던 돈 3000만원에 은행대출 3억2000만원을 받아 일산 마두동에 땅 230㎡(70평)을 샀다. 땅은 마련했지만 이번엔 건축비가 없었다. 궁리 끝에 전세를 줄 수 있는 다가구 주택이란 해법을 찾아냈다. 1층에 도서관을 넣고 2층엔 원룸 둘, 투룸 하나 총 3가구를 세 줄 수 있게 지으면 건축비를 충당할 수 있을 듯했다. 3층은 식구들이 살 집을 넣고 옥탑에도 방을 두어 작업실로 쓸 수 있게 한다면? 만사해결이었다.



그리고 설계에 들어간 지 1년 남짓, 연면적 330㎡(100평)의 소소재가 매력적인 형태를 드러냈다. 소소재는 근본적으로 아이들이 즐겁게 책을 읽도록 만들려고 지은 집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천장을 높게 해서 다락방도 만들고 반지하 아지트도 만들었다. 평면적인 공간은 사고를 평면적으로 만들고 레벨이 다른 공간이 사고의 켜를 중층적으로 만든다는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대지를 보니 길쭉한 게 고래처럼 생겼더라고요. 하나님의 명을 어긴 죄로 고래 배 속에 삼켜진 요나라는 인물이 있지요? 나선형 계단은 사실 고래의 식도예요. 요나가 거기에서 회개하고 새로 탄생하는 곳이지요.”



총 건축비는 2억4000만원 정도. “집이 생겼지만 빚더미에 앉았어요. 매달 200만원 넘는 월세를 은행에다 내고 있다니깐요. 빛이 많이 들어오게 짓다 보니 빚도 많아지더라고요.”



대신 시인 부부는 옥탑에 올라 정발산으로 지는 석양을 나란히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세상사에 공으로 얻는 게 뭐가 있으랴. 제 집 옥상에서 날마다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비용을 치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그 사이 도서관 ‘웃는책’은 문을 닫고 말았다. 학원에 가기 바쁜 요즘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틈이 도무지 없다. 유감을 넘어 슬픈 일이다.



“소소재는 지금 영혼이 빠져나갔어요”라고 함성호는 말한다. 하지만 그럴리야! 덤덤한 노출 콘크리트 외벽을 담쟁이는 열심히 기어 올라가고, 자금이 바닥나 나무도 제대로 심지 못했다지만 비워놓은 뜨락엔 토끼풀과 질경이가 저희끼리 맹렬하게 스크럼을 짜고 있는 걸! 풀과 바람과 소리의 생명력으로 가득 찬 소소재는 지금 새롭게 진화 중이다.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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