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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하나 때문에 … 곳간 텅빈 향군

중앙일보 2012.06.22 03:00 종합 17면 지면보기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 수사로 21일 드러난 재향군인회의 ‘790억원 변제 피해 사건’은 예견된 사고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향군이 문어발식으로 아파트 건설 사업 등 각종 수익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향군이 ‘브랜드 네임’을 빌려주고 보훈성금 등 명목으로 일정한 돈을 챙기는 이른바 ‘대명(貸名)사업’의 실체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사업단장이 잘못 선 보증 대납
사업단장마다 향군회 인감 가져
횡령 최씨, 본부 몰래 지급보증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부른 결과”

 이날 검찰 등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인 G사 등 4개 상장회사가 KTB투자증권 SPC(특수목적법인)인 C사에서 대출받은 790억원 중 277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최모씨는 향군 S&S사업본부 산하 U-케어 사업단장이었다. S&S 사업본부는 고속도로휴게소사업본부 등과 함께 향군의 5개 직영사업 중 하나다. 향군의 한 관계자는 “이곳은 특정한 사업을 정해 두지 않고 그때그때 조직의 먹거리를 찾아서 사업을 추진한다”며 “유망한 분야에 투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씨는 실제 사업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더 컸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장회사 대표들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용도가 낮아 운영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장회사 4곳에 향군의 지급보증을 해줘 각각 130억~310억원을 대출받게 주선했다. 그 대가로 상장회사와 물품매매계약을 맺어 대출금 중 700억원가량을 선급금으로 받았다. 최씨는 이 중 400여억원은 4개 상장회사에 운영자금으로 송금하고 나머지 277억원은 향군 명의 은행계좌에 입금해 놓고 수시로 빼내 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씨는 지급 보증을 할 때 평소 입찰 등 다른 용도에 쓰기 위해 갖고 있던 향군의 사용인감을 몰래 사용했다. 이런 사용인감은 10여 개에 이르는 사업단이면 대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부실 및 편법 대출이 상장회사들의 경영 개선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대출금 160억원 중 각종 경비를 제외하고 운영자금으로 70억원을 손에 쥐었던 G사는 지난 1월 상장폐지됐고 W사는 지난 3월, Q사는 5월에 각각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또 다른 G사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일단 향군은 “최씨가 권한 밖의 일을 한 만큼 구상권 소송 등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향군이 상장회사로부터 돈을 받아내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씨도 변제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횡령한 돈을 이전에 실패한 사업으로 진 수십억원대 빚을 갚거나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써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최씨는 그중 일부는 자신과 친형, S&S사업본부 직원 등 명의로 W사 주식 12만 주(25억원 상당)를 사는 데 쓰고 이들을 4개 상장회사 임원으로 등재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최씨의 행각을 두고 향군의 ‘대명사업’이 빚은 결과라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향군이 사업단을 운영하면서 이름을 빌려주는 대신 계약금의 일정 비율을 보훈성금 등으로 가져가는 관행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때문에 향군이 사업을 남발한 것이 이번 사고를 불러온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향군 측은 “우리는 총회와 본부 심의를 거쳐서 사업을 결정하지 대명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조강수 기자



◆재향군인회=1952년 창설 당시 3만여 명이던 회원은 현재 약 850만 명이다. 전국에 3600여 개 지회가 있으며 전 세계 11개국에 17개 지회가 활동한다. 5개 직영사업 외에 통일전망대 등 7개 산하 기업체가 있다. 연간 예산은 250억원 안팎. 정관상 회원들의 회비나 정부 기금, 국고보조금으로 충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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