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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정전도 11조 피해…사상 첫 블랙아웃 ‘연습경보’

중앙일보 2012.06.22 01:40 종합 3면 지면보기



정부·한전, 전국 20분간 비상훈련



























“예비전력이 140만㎾로 떨어졌습니다. ‘경계’ 단계를 발령합니다.”



 21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 수급상황실. 남호기 이사장에게 가상의 긴급 보고가 전달되면서 전국적인 정전 대비 위기대응 훈련이 시작됐다. 수급상황실 실무진은 지식경제부, 한국전력과 각 발전사 상황실과 연결된 핫라인으로 비상 발령 사실을 통보했다. 곧바로 민방위 재난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재난방송이 시작됐다. 한전은 전력을 많이 쓰는 주요 공장에 긴급 절전을 요청했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대비해 전국적인 훈련이 벌어진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가상의 상황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최근의 빠듯한 전력 수급 사정을 감안하면 언제든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 전례 없는 훈련도 지난해 9·15 정전사태처럼 불시에 위기가 닥쳤을 때 생길 혼란과 피해를 최소화해보자는 취지에서 한 것이다.



 이날 2시부터 20분간 진행된 훈련 상황도 블랙아웃 직전까지 가는 시나리오로 짜여졌다. 2시10분, 50만㎾급의 영흥화력발전소가 고장으로 갑자기 정지하며 순식간에 예비전력은 60만㎾까지 내려갔다. 결국 마지막 비상단계인 ‘심각’이 발령됐다. 전력거래소 상황실장은 “긴급 부하조정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예비전력이 바닥나 전국의 모든 발전소가 동시에 멈추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별로 돌아가며 강제로 전기를 끊는 조치다.



 그러자 시범 단전 대상인 서울 마포구 염리동 래미안 아파트, KT 영등포 지사 등 7개 도시의 28개 건물에는 실제로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서울시청 앞 등 전국 17개 교차로에선 신호등을 끈 채 경찰관이 수신호로 교통 정리에 나섰다. 롯데마트 97개 점포에서도 실제 정전을 대비한 훈련이 실시됐다. 서울 구로점에선 매장 전체에 전력공급을 차단하고 이후 비상발전기를 가동해 평소 쓰던 전력의 40%만으로 신선식품 매장 등 꼭 필요한 곳에 전기를 공급했다. 갑작스레 전기 공급이 중단되자 깜짝 놀랐던 시민들은 직원의 안내에 이내 훈련에 동참했다. 롯데마트를 찾은 주부 김숙희씨는 “불시에 정전을 겪으니 언제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과 평소 대비를 충분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전에 계획된 훈련 장소 밖은 여전히 ‘절전 무풍 지대’였다. 재난 경보 사이렌이 울리던 시간 서울 명동거리의 상점들 대부분은 여전히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었다. 한 신발 매장 점원은 “훈련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공식 통보를 받은 게 없어 평소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옷가게 직원도 “에어컨을 끄면 전산망까지 같이 꺼지게 돼 있어서 훈련에 동참할 수 없다”고 말했다.



 7월부터는 문을 열어놓고 냉방을 하다 적발되면 최대 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주요 대형건물의 냉방온도를 규제하는 등 강제 조치가 시작된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 전력 당국이 수급 안정을 위해 목표치로 잡고 있는 예비전력 수준은 500만㎾ 이상, 비상조치에 들어가는 건 400만㎾ 이하일 때다. 그런데 이달 들어 8일간 예비전력은 500만㎾를 밑돌았다. 7일에는 344만㎾까지 떨어지며 첫 번째 비상단계인 ‘관심’ 단계가 발령되기도 했다. 최형기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장은 “산업체에 미리 절전을 요청하는 수요 관리를 하지 않았다면 이달 초 예비전력은 38만㎾까지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위기는 연중 이어질 전망이다. 최대 고비로 지목되는 8월 3~4주를 넘겨도 11월까지 예비전력은 300만~500만㎾에 머물 것이란 게 지경부의 예상이다. 겨울을 대비해 발전기들이 정비에 들어가면서 공급이 줄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특히 5~6월 전기 부족에 정비 시기를 가을로 늦춘 발전소가 많아 사정이 더 어렵다. 공급이 뻔한 상태에서 늘어난 수요를 맞추려 억지로 ‘돌려 막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블랙아웃이 발생할 경우 발전소를 다시 돌리는 데만 5~6일이 걸린다. 이 기간 생산활동 중단으로 입는 직접적인 피해액만 단순 계산해도 11조6400억원에 달한다.



 결국 당장은 절약밖에는 답이 없다. 지경부는 이날 훈련으로 2시10분을 기준으로 548만㎾의 전력 소비를 줄였다고 추산했다. 원자력발전소 다섯 기의 발전용량과 맞먹는 규모다.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인 387만㎾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1750개 산업체가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조업시간 이동, 비상발전기 가동 등으로 아낀 것이다. 가정에서 자발적으로 절감한 건 5000㎾에 그쳤다. 이관섭 지경부 에너지자원실장은 “기업과 달리 가정에는 직접 홍보하는 게 쉽지 않아 참여를 독려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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