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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의 캐릭터 속으로] ‘아이두 아이두’ 김선아

중앙일보 2012.06.22 00:34 종합 23면 지면보기
김선아
종종 삶에서 골목을 마주치곤 했다. 어귀에 매혹적인 꽃이 피어있기도 했고,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쉽사리 발을 딛지 못했다. 가야 할 길이 있었고, 가던 길이 편했다. 무엇보다 두려웠다.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안내하지 않은 길이야, 위험해’라고 하면서.


굳세어라, 출산 결심한 골드미스여 …

 MBC 수목 드라마 ‘아이두 아이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구두 디자이너 황지안(김선아)은 평사원에서 이사로 고속 승진한 커리어 우먼. 세상은 그녀를 ‘골드미스’라고 부르고, 부하직원들은 ‘메두사’라 한다. 그녀와 얼굴을 마주치면 돌처럼 굳어서다. 친구도 없고, 부모님과도 소원해진 채 오직 일만 하는 지안에게 불현듯, 매력적인 남자가 둘씩이나 나타난다. 전형적인 캐릭터와 설정. 그저 그렇고 그런 드라마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지안이 덜컥, 임신을 했다.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와 딱 하룻밤을 보냈을 뿐인데. 시쳇말로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낙태를 할까, 낳을까. 그녀는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한다.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빼곡히 적힌다. “나 닮았으면 불효막심하고 성질도 더럽고 친구도 없을 텐데….”



 여기서 반전. 그녀,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탄탄대로로 이정표만 보고 달리던 지안이 생각지도 못했던 골목으로 길을 꺾은 것이다. 출처 불분명한 ‘모성애’ 때문이라고만 하기엔 심심하다. 지안의 독백을 들어보자.



 “엄두가 안 난다. 그런데 아주 조금, 궁금해졌다.”



 친구가 “힘들어 죽겠지만 억만 배 행복해”라고 말하는 이유, 뱃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왠지 울컥하는 감정에 대한 궁금함. 오직 구두와 승진밖에 몰랐던 메두사의 삶에도 궁금한 세상이 나타난 거다. 비록 사고라고 해도.



 이제부터 드라마는 흥미로워진다. 모성을 발견한 골드미스의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골목을 탐험하고자 나선 한 인간의 이야기로서 말이다. 사실 그게 우리들 모두의 ‘로망’ 아니던가. 게다가 당당한 출산을 선언한 비혼녀, 안방극장에선 보기 드문 캐릭터다. 아직까진 한국 사회에서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다.



 기대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영원히 삼순이일 줄 알았던 이 언니 김선아, 이번엔 예쁘다. 툭툭 내던지는 듯한 발성과 평범한 외모로 이 시대 ‘삼순이’들을 대변해왔던 김선아에게 ‘시크함’도 이렇게 어울릴 줄은 정말 몰랐다. 어쩌면 배우 김선아에게도 지안은, 골목이었겠다. 용기를 내 들어서보니 황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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