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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09> 범죄 예방용 환경설계(CPTED)

중앙일보 2012.06.22 00:05 경제 13면 지면보기
범죄 예방법 중에 최근 주목받는 게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입니다.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이란 뜻이죠. 아파트·학교·공원 등 공간을 설계할 때부터 범죄 예방을 위한 다양한 수단을 먼저 적용하는 이론입니다. 셉테드의 종류와 작동 방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공원 벤치 팔걸이, 놀이터 키작은 나무가 폭력·유괴를 막아준대요

이가혁 기자



지난 4월 30일 밤 서울 창천동 바람산 공원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공원 산책로 옆 화단에서 대학생 김모(20)씨가 머리와 가슴 등 몸 수십 군데를 칼에 찔린 채 발견됐다. 이곳은 운동 기구가 잘 갖춰져 동네 주민들도 평소 운동을 위해 자주 찾는 근린공원이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잦았지만 범죄의 사각지대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곳 입구나 산책로 곳곳엔 가로등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사건 당시 시신이 발견된 계단 옆 비탈길은 어두침침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았다. 인근 건물에서 공원이 내려다보이긴 하지만 울창한 나무 때문에 사건 현장은 가려졌다. 이보다 앞서 같은 달 1일 중국동포 우위안춘이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경기도 수원시 지동도 상황은 비슷했다. 우씨가 귀가하던 피해 여성을 밀쳐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갔던 보도는 두 사람이 채 지나갈 수 없을 만큼 폭이 좁았다. 피해자가 다른 곳으로 피할 공간적 여유가 없었다. 또 당시 길가에 빽빽하게 주차된 차들로 인해 길 건너에 있는 사람들이나 지나가던 차에서 범행 모습을 목격하기 힘들었다. 사건 발생 며칠 후 현장을 찾았던 형사정책연구원 박경래 연구위원은 “전체적으로 ‘범죄를 저질러도 되겠다’는 심리를 자극하는 (환경적)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중앙에 놀이터를 짓고 주변에 낮은 나무 위주로 심어 시야를 확보하는 등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놀이터를 감시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셉테드의 사례다. [사진 동부건설]


가로등 간격 조절로 범죄 가능성 줄여



범죄가 일어난 뒤에 범행 장소에 대해 분석하는 일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 수 있다. 하지만 범죄가 일어난 공간들을 분석하고 공통점을 찾아내 취약점을 보완하면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범죄예방 연구와 관련해 최근 ‘셉테드’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셉테드는 주어진 환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공간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범죄 예방을 염두에 둔다. 범죄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동시에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방법이나 그에 관한 학문을 통칭한다.



 셉테드 원리가 적용된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공원, 버스정류장 등 공공장소에 설치된 벤치 중에는 팔걸이가 중간에 하나 더 붙어있는 것이 종종 눈에 띈다. 술 취한 사람들이 벤치에 아무렇게나 누워 잘 수 없도록 설계한 것으로, 주폭(酒暴) 범죄를 줄이기 위한 한 방편이다. 골목길 한편 어수룩한 공간에 환한 조명을 달거나 지하주차장에 여성 전용 주차공간을 건물 출입문과 가깝게 배치한 것도 같은 이유다.



‘오스카 뉴먼’ 공간 설계로 범죄 예방 개념 고안



1 유리로 엘리베이터를 시공해 내부 상황을 감시할 수 있도록 했다. 2 아파트 외벽 배관을 타고 침입하는 강도를 막기 위해 뾰족한 요철 커버를 둘렀다. 3 지하주차장에 비상벨을 설치해 위급상황 시 관리소와 연락이 가능하도록 했다. [중앙포토]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범죄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의 오스카 뉴먼이라는 학자가 1970년대 초 시행한 연구를 통해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뉴욕의 어느 두 마을에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범죄 발생 수가 3배가량 차이가 나는 현상에 의문을 품었다. 뉴먼은 두 마을이 건물 배치 모습이나 공공 장소 활용 실태 등 공간적 설계에서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연구한 끝에 공간 디자인에 따라 범죄 예방 효과에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실제 ‘셉테드’라는 용어는 1971년 레이 제프리라는 학자가 쓴 책 제목에서 유래됐다. 셉테드가 학문적으로 본격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지만 그 원리는 인류 보편적인 것이라 고 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마을 진입로에 세웠던 장승도 좋은 사례다. 마을 진입로 어귀에 서 있는 장승은 외지인들에게 ‘마을 사람들의 사적 영역’임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셉테드 이론에 비춰볼 때 장승은 곧 “우리 마을의 공통적 사회규범을 따르라”는 상징적 장벽이었던 것이다.



아파트에도 셉테트, 건축설계의 기본으로



셉테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안전한 주거공간’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는 추세다. 주민들의 동선을 고려해 보안등이나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이다. 놀이터를 단지 아파트의 한구석이 아닌 정중앙에 설치해 부모들이 베란다를 통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상황을 주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셉테드의 기본이다. 시야 확보가 가능하도록 낮은 키의 조경 수목을 심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벽면에 설치하는 가스 배관을 창문과 1.5m 이상 떨어뜨려 설치하거나 아예 벽 안으로 매립하기도 한다. 스파이더맨 처럼 배관을 타고 집에 침입하는 강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민들의 동선마다 비상버튼을 설치해 즉시 관리소와 연락이 가능하도록 하는 곳도 있다.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범죄에 취약한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에서도 아파트와 비슷한 원리의 셉테드 기법들이 속속 적용되고 있다. 범죄 온상으로 전락한 공원을 비롯해 공공장소에 셉테드를 적용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01~2010년) 전국의 공원에서 발생한 범죄는 총 3만9407건으로 연평균 3940건에 이른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범죄도 폭력, 절도, 강간, 강도, 마약 순이었다.



 연구팀이 서울 시내 67개 공원 시설을 조사한 결과 “공원 내 시설 마련은 우수하나 시설들의 안전성에 문제가 발견되고, 안전 관리 정책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연구팀은 범죄 예방 대책으로 보행공간에 사각지대를 없애고, 벤치 옆에 휴지통과 조명을 함께 설치할 것 등을 권고했다.



해외에서는 치안 정책으로 일찍부터 활용돼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앞서 셉테드에 정책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이후부터 주택단지를 조성하거나 도로를 낼 때 범죄 예방에 효과적으로 설계하도록 조례를 제정하고 건축 지침을 개발해왔다.



 영국은 중앙정부 주도로 1989년 방범인증제도인 SBD(Secured By Design)을 시행해 범죄 예방 기준을 충족한 주택이나 마을 전체에 대해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일본에서도 2004년부터 ‘방범우량멘션·주차장’ 인증제도를 시행해 빈집털이나 주차장 내 범죄 등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2년 건설교통부에서 고안한 ‘방범설계를 위한 지침’을 시작으로 정책적인 셉테드 연구가 시작됐다. 범죄 예방이나 공공정책 개발 등과 관련된 본격 연구는 2005년 3월 경찰청에서 한국역사상 최초로 셉테드 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경찰청이 경기도 부천시를 셉테드 시범적용 지역으로 지정해 2005년부터 2년 동안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하고 가로등을 개선하는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지역 범죄발생률과 주민들이 지닌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지역보다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건축학·범죄학 등 학계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10년에 사단법인 한국셉테드학회가 창립돼 매년 논문집을 발표하고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 지자체·경찰과 활발히 교류하며 범죄 예방을 위한 도시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또 학회가 자체 개발한 평가기준을 토대로 건축물 또는 공동 주거 단지를 심사한 후 인증서를 주는 ‘범죄예방 디자인 인증제’도 시행 중이다.



 서울시도 셉테드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 공동주택 심의기준에 따르면 지하주차장 내에 25m 간격으로 비상벨을 설치하고 최상층을 여성 전용 주차장으로 정할 것을 명시했다. 또 주거 단지 내 보도나 어린이놀이터 주변에 나무를 심을 때는 가급적 50㎝ 이하의 나무를 심어 시야를 확보하고 주민들로 하여금 자연적 감시가 가능하도록 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시민제안정책 99개 사례 중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정책으로 ‘여성들이 안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 도입’이 뽑혔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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