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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테마주는 대선 주자의 수치다

중앙일보 2012.06.22 00:00 종합 30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다 소설이지요.”



 가치투자로 유명한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본부장은 대선 테마주에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그처럼 대형 펀드를 운용하는 전문가는 대선 테마주를 잡주(雜株)로 분류하고 관심도 안 둔다. 금융당국과 언론도 수시로 ‘주의보’를 발령한다. 그런데 왜 개인들은 줄기차게 대선 테마주 주변을 서성댈까.



 첫째, 따가운 눈총을 견디면서 테마주는 실제로 올랐다. 금융감독원이 정치인과의 관계 등 풍문의 힘으로 주가가 급등한 테마주 131개를 전수(全數) 조사했다. 테마주 주가는 지난해 9월부터 ‘나 홀로’ 급등해 올 5월까지 일반주보다 46.9%포인트 더 올랐다. 금감원이 “테마주 투자는 거품을 사는 것”이라고 경고할 만했다.



 둘째, 요즘 시황이 안 좋다. 대체로 기업 실적이 나쁘다. 유럽 위기를 비롯해 나라 밖 사정도 혼란스럽다. 오죽하면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이 “여전히 자욱한 안갯속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토로했을까. 증시 체력이 허약하니 테마주를 들먹이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판친다.



 셋째, 테마주는 우리 사회의 음습한 구태에 기대고 있다. 생각해 보자. 우리의 공적 제도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가. 규범을 토대로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높은가. 사회적 갈등이 떼법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해결되는가.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는 이가 많다면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탄탄한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다들 불안해 혈연(血緣)·지연(地緣)·학연(學緣) 등 온갖 인연을 애써 따지고 맺는 것이다. 재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한국의 사회적 자본을 중하위권으로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누구의 동생·친구라고, 혹은 정치인과 함께 찍은 사진 하나 때문에 주가가 뛰는 일까지 벌어졌다. ‘옷깃만 스쳐도 상한가’ ‘사돈의 팔촌주’란 우스개까지 나돈다.



 테마주가 대선주자 탓은 아니다. 그렇다고 못 말리는 일부 투자자 얘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테마주를 보며 한비자(韓非子)가 군주를 망하게 하는 여덟 가지로 열거했던 ‘팔간(八姦)’을 떠올리길 바란다. 잠자리를 같이하는 동상(同床), 곁에 둔 측근인 재방(在傍), 자식과 친인척을 이르는 부형(父兄), 위세를 빌려 권력을 휘두르는 위강(威强)…. 대선 후보 시절에, 나아가 선거에서 이겨 청와대의 주인이 돼도 테마주를 앞에 놓고 자신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회초리로 삼았으면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기 위해 무상보육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회가 투명하고 신뢰가 넘쳐나야 사무실이 아니라 밤의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중요 사안이 결정되는 일이 줄어든다. 그래야 여성의 경쟁력도 제대로 살아난다.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자기 이름이 붙은 테마주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더 이상 테마주 따위가 설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새겨야 한다. 정치 테마주의 존재는 대선 주자의 수치(羞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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