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88세 탐험가 “태초의 신비, 무인구 다시 도전”

중앙일보 2012.06.21 00:42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철암 경희대 명예교수는 2007년 티벳의 무인구을 한 달간 탐험했다. 박명예교수는 600종의 티벳식물을 촬영했다. 들고 있는 사진 속 식물은 양귀비의 일종인 메커넙시스다. [최승식 기자]


“거기는 태초의 모습 그대로에요. 아무도 밟지 않은 곳이에요. 하늘의 별이 전부 주먹만해요. 황홀하죠.”

박철암 경희대 명예교수
티벳 창탕고원 무인지대 해발 5000m 영하 30도
2007년 중국과 공동 탐험
62년 국내 첫 히말라야 원정



 박철암 경희대 명예교수(88·중문학)는 2007년 탐험한 무인구(無人區)의 인상을 이렇게 전했다.



 무인구는 중국 티벳북쪽 창탕고원에 자리한 무인지대다. 한반도와 비슷한 20만㎢의 광활한 규모에 말그대로 사는 사람이 없다. 혹독한 환경 때문에 살 수도 없다. 해발고도는 5000m가 넘고, 겨울이면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 출입허가도 얻기 힘든 이곳을 그는 2007년 지질학자 등 중국 측 인사 14명과 팀을 이뤄 한 달 넘게 탐험했다.



 그가 전하는 무인구는 황량하고도 신비롭다. 특정 지역에 접근하면 시계·라디오가 정지하고 자동차 엔진마저 잠시 멈춘다고 한다. ‘세계의 지붕’이라 할만한 높은 지대이면서 암모나이트 같은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 사람은 없지만 대신 곰, 늑대, 황양, 야생당나귀, 시라소니 등이 집단으로 산다.



 그는 오랫동안 무인구 탐험을 꿈꿔왔다. 2007년 본격적인 최초 탐험에 앞서 10번쯤 이리저리 부분적 접근을 시도했다. “1996년 티벳에 갔다가 라싸 대학 총장에게 무인구 얘기를 처음 들었어요. 지금도 사람이 살지 않고, 앞으로 100년 뒤에도 살지 않을 곳이래요. 가슴이 막 뛰었어요. 내가 거길 가야겠다 싶었죠.”



그가 무인구에서 찍은 호수풍경이다. 그는 “무인구에는 780여 개의 호수가 산재해있다”며 “담수호가 적고 염호(鹽湖)가 많다”고 전했다. [사진 박철암 교수]


 그는 전인미답의 세계를 좇아온 탐험가다. 1962년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답의 상태였던 다울라기리 2봉에 도전했다. 그는 부족한 경비를 마련하고자 지금 평당 수천만원하는 서울의 집까지 팔았다. 1971년엔 로체샤르 초등에 도전했다.



비록 정상에 오르지는 못 했지만 그의 탐험정신은 멈추지 않았다. “ 중국이 티벳을 개방했다는 신문 보도를 봤어요. 1990년 티벳을 처음 들어갔죠.” 이후로 그는 30번쯤 티벳을 다녀왔다. 특히 티벳의 야생화 등 희귀식물들이 그를 사로잡았다. “고원지대를 가다 잠시 앉아 쉴 때였죠. 마침 유목민 아가씨가 양떼를 몰고 가요. 한 17살쯤 됐을까, 그 아가씨가 꽃을 입에 물고 그걸로 피리를 불어요. 별천지 같았죠. ” 지금까지 그는 600종의 티벳식물을 사진에 담았다.



 그는 해발 2000m가 넘는 평안북도 낭림산맥 동백산 밑에서 자랐다. “ 어른들이 동백산 위에 배 조각이 있다고 그래요. 노아의 방주처럼. 그때 교회를 다녔는데 궁금해서 올라가봤죠. 그게 등산을 시작한 계기였어요. 또 산록에는 가을이면 마타리꽃이라고 노란 야생화가 피어요. 키가 한 길인데 바람불면 나부끼는 꽃 속을 걷는 게 참 좋았죠.”



 그는 43년 독립운동에 참여할 생각으로 만주로 갔다. 거기서 중국어를 배웠다.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다 80년대에 정년퇴임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무인구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올 8월 티벳에 가서 무인구 출입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타진할 참이다. “미지에 도전하고 싶어요. 북극과 남극을 난센과 아문젠이 탐험하지 않았습니까. 에베레스트는 힐러리경이 처음 올랐고요. 무인구는 박철암이 탐험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요.”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