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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렘브란트 자화상

중앙일보 2012.06.21 00:00 종합 32면 지면보기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유화 600여 점, 에칭 300여 점, 소묘 1000여 점. 렘브란트 판 레인(1606~69)이 남긴 그림이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그의 장기는 초상화. 시대를 잘 타고난 덕도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독립해 번영을 구가한다. 상인을 필두로 한 부유한 시민들은 집을 장식할 작은 초상화를 많이 주문했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최고의 초상화가로 자리 잡았다. 일찌감치 부자가 돼 아름다운 아내를 얻고 서른셋에 암스테르담 시내에 저택도 마련했다.



 사람을 잘 그린 그는 자기 얼굴도 자주 그렸다. 총 100여 점. 자화상만으로 그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다. 스물셋의 자화상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의 청년이다. 초상화의 고수답게 표정을 연구하려 그린 그림이었다. 34세엔 고객들처럼 값비싼 옷으로 한껏 치장한 자기 모습을 그렸다. 귀족이나 성주(城主)를 닮은 포즈에선 성공한 남자의 패기와 여유가 넘친다.



 그러나 평생 그 같은 연극적인 초상화만 그렸다면 오늘날의 렘브란트는 없었을 터. 그저 밀려드는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초상화 공방 주인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그는 초상화의 전형적 틀을 깨기 시작한다. 시대를 거스르는 것, ‘미술계 수퍼스타’다운 행보다. 예술적 성취는 사회적 몰락과 함께 왔다. 영국과의 전쟁으로 그림 주문이 줄었고, 부인과 사별했다. 1657년엔 파산했다. 1668년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렘브란트는 임종을 지키는 이 하나 없이 죽음을 맞았다. 유산은 화구와 몇 벌의 옷가지뿐.



 빛과 그림자의 화가, 흔히 렘브란트를 이렇게 부른다. 빛과 함께 그림자를 품는 그의 그림처럼, 그는 자기 생의 그림자도 놓치지 않았다. 그림은 59세 무렵의 자화상, ‘예술가의 초상’이라고도 불린다. 정면을 향한 그의 시선은 관객이 아니라 거울 속 자신을 응시하는 듯하다. 영광의 모습은 물론 늙고 추해진, 더 잃을 것도 없이 불행해진 자기 모습까지 화폭에 담은 그의 집념이 무섭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자기 찾기인 것을. 고독과 무력감이 싹트는 그 지점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 누구인가. 300년 전의 렘브란트가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런던 켄우드 하우스에서 소장한 이 작품은 미술관 리노베이션을 계기로 처음으로 유럽을 떠나 미국에 가 있다. 이달 초 휴스턴 미술관을 시작으로 밀워키·시애틀 등지로 순회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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