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니어가 말하는 추리소설

중앙일보 2012.06.19 01:53
텐트로 분위기를 잡은 다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여름밤의 묘미가 될 수 있다. 사진은 추리소설 매니어인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왼쪽)와 모비딕 조원식 기획실장.



천둥 번개 치는 여름밤 마지막 한 장을 넘겨야 미스터리는 끝난다

하늘은 구름이 껴 흐리고 바람도 제법 분다. 오늘밤은 재미있는 책이 당긴다. 이 때를 대비해 아껴둔 추리소설을 꺼낸다. 창문 밖으로 천둥번개가 친다. 날씨도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날 밝을 때쯤에야 책을 덮는다.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추리소설의 미스터리다. 독서가이자 추리소설 매니어인 출판사 북스피어 김홍민(36)대표와 모비딕 조원식(50)기획실장에게 추리소설의 매력에 관해 물었다.



-나는 이렇게 추리소설에 빠졌다.



김홍민(이하 김)=“어릴 때 집 서가에는 항상 어마어마한 책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무협지를, 중학생 시절엔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과 셜록 홈즈, 괴도 루팡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 대학졸업 후 미야베 미유키 책을 만났다. 예전의 추리소설은 늘 반전과 함께 범인이 뒤에 등장했다. 누가 어떤 트릭을 써서 어떻게 사람을 죽였느냐가 관건인데, 미야베 미유키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를 파헤치더라. ‘왜’ 죽었는지를 알고자 하니 사회 배경, 주변 인물이 부각된다. 픽션임에도 작가의 꼼꼼한 취재를 통해 논픽션처럼 느껴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조원식(이하 조)=“초등학교 때 형사 콜롬보를 보고 자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1970년대 당시에도 추리소설 붐이 있었다고 본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10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TV시리즈로 방영됐고, 동서문고에서는 엘러리 퀸의 ‘X의 비극’ ‘Y의 비극’이 나왔었다. 대학졸업 후 인문사회책 출판사에서 일을 하다보니 추리소설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6년 전 지인의 소개로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읽게 됐다. 문학적 성취도에서 명작에 손색이 없더라. 그 뒤로 자연히 장르소설(SF·무협·판타지·추리·호러 등을 두루 포함하는 말) 팬이 됐다.”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김=“대학시절 문예사조를 배웠다. 요지는 새로운 사조는 항상 예전 것을 뛰어넘어 진화했다는 것이다. 범인과 밀실, 트릭이 있는 본격 추리소설 다음을 장식한 것은 인위적인 것을 배제한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사회파 뒤에는 다시 범인을 잡는데 비중을 두는 신본격 추리소설이 나왔다. 이처럼 추리소설도 오래 진화하며 다양성을 갖춰왔다. 또 장르소설에는 늘 동일한 공식이 있다. 손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도록 작가가 만든 장치, 바로 궁금증이다.”



조=“무엇보다 ‘재미’가 있으니 읽는다. 그러려면 완성도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추리소설이다 순문학이다, 분류하는 걸 좋아하는데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건 완성도다. 그래야 재미가 있으니까. 살인사건을 통해 죄와 벌의 심리를 밝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장르적인 장치가 있는 고전이다. 정유정의 ‘7년의 밤’ 역시 장르 분위기가 있다.”



김=“실제로 완독률이 가장 높은 분야가 추리소설이다. 역시 이유는 ‘재미’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책도 대부분 판타지, 추리소설이 많다. 아이 교육에 추리소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부모도 있는데, 책을 읽지 않는 게 문제지 뭐든 읽는 건 문제가 아니다. 재미있는 책을 골라 끝까지 읽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조=“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추리소설을 선호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집요하게 파고들어 생각하는, 지적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보는 것 같다.”



김=“개인적으로는 원서로 추리소설을 읽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원서추리소설과 잡지로 이탈리아어를 배웠다고 했다. 내용이 궁금하니 사전을 찾지 않고 서둘러 읽어 내려가기 때문이다. 한번은 50대의 지인에게 미야베 미유키의 ‘흑백’을 권한 적이 있다. 픽션은 절대 읽지 않고 논리 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처음에는 ‘나와 상관없는 책을 받았다’고 생각했다는 그분은 『미야베월드』의전 시리즈를 다 샀다고 한다(웃음).” 



-밤을 새서 읽은 추리소설의 기억.



김=“기리노 나쓰오의 ‘아웃’. 미야베 미유키와 비슷한 색깔을 가졌지만 더 박력이 있다. ‘가족 따위는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주부의 살인에서 시작된 범죄 이야기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우부메의 여름’도 있다. 전통적인 추리소설 방식은 전혀 따르지 않는 요괴 미스터리다. 의학과 신학, 종교와 철학, 우주 전반을 다루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색다른 작품이다. 책을 읽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쯤에 주인공은 알량한 인간의 지식으로 어떤 일을 미스터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말한다. 모든 일은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다는 주인공의 말에 뒤통수를 맞았다.”



조=“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은 신문에 나온 부고를 메모해 전국을 떠돌며 유족을 만나는 주인공이 나온다. 작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는 주인공을 통해 삶과 죽음, 선과 악을 이야기한다. 도스토예프스키 적인 주제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김=“텐도 아라타는 데뷔를 하고서도 죽 작품을 쓰지 못했던 작가였다. 어느 날 편집자가 미스터리를 써보라고 조언했는데, 그는 ‘미스터리가 뭘까?’라는 물음부터 시작해 ‘인간이 가장 미스터리’라는 답을 냈다고 한다. 화목하지 못한 인간, 전쟁을 벌여 서로를 죽이는 인간 등 인간 탐구가 바탕이 된 소설이 ‘애도하는 사람’이다.”



조=“개그콘서트에 보면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유행어가 있지 않나. 그게 정답이다(웃음).”



-가장 매력적인 추리소설 캐릭터.



김=“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에 나오는 스기무라 사부로. 나와 같은 편집자이고 소심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진 중년 남자라 애착이 생기더라. 미야베 미유키가 소설 속에 처음 등장시킨 탐정이기도 하다. 영미권에서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등장하는 필립 말로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입은 코트를 나도 입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조=“셜록홈즈의 친구 왓슨. 서브 역할이지만 부드러운 멋이 잇다. 일상적이면서 평범한 느낌이 좋다.”



● 매니어가 추천하는 추리소설 4선



1 대실 해밋의 『그림자 없는 남자』



미국 추리소설의 아버지이자 하드보일드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대실 해밋 전집 중 다섯 번째 책. 김홍민 대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게 하드보일드의 매력”이라며 “해밋의 작품 중 가장 유쾌한 책”이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2 마쓰모토 세이초 『일본의 검은 안개』와『점과 선』



비딕이 함께 선보이는 ‘세이초 월드’시리즈 중 하나다. “다작으로도 유명한 작가로 질이 떨어지거나 비슷한 패턴이거의 없다는 점에서 놀랄만하다”고 조원식 실장은 감탄한다. ‘점과 선’은 8월에 출간 예정.



3 덴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



조 실장이 밤새워 읽은 책이다.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전국을 떠도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뤄 제140회 나오키상을 받았다. 작가는 “그 어떤 차별 없이 그저 애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떨까 했다”고 집필 취지를 밝혔다.



4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시체도둑』



조 실장은 “의학과 추리소설의 기법을 섞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놀랄 정도로 잘 쓴 고전”이라고 평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시체도둑’은 그의 인생경험이 담긴 9개의 작품이 수록됐다.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사진=황정옥 기자

촬영협조=사바나 아웃도어>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