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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넘치는 직함, 모자란 호칭

중앙일보 2012.06.14 00:45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대우
‘○○○회장이 △△협회 신임회장에 선출됐다’. 얼마 전 받은 보도자료의 한 구절이다. 얼핏 보기에 회장직을 연임하게 된 듯싶었다. 아니었다. 신임회장은 직전에 이렇다 할 직함이 없었다. 짐작하건대 보도자료 작성자는 새 회장 소개를 ‘○○○씨’로 시작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 여긴 모양이다. “한국 중년 남자는 ‘명함’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일갈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실은 한국 중년 여자도 불안하다. 이름 석 자를 아는 사이라면 몰라도, 언제든 ‘아줌마’로 불리기 십상이다. 그 비하적 뉘앙스 때문에 쓰임이 줄긴 했다. 그래도 급할 때 가장 만만한 건 ‘아줌마’다. 반대로 ‘사모님’도 있다. 내키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대개 ‘사장님’과 짝을 이뤄 맥락 없이 쓰인다. ‘사모님, 좋은 땅 있는데요’ ‘사장님, 상가에 투자하세요’ 하는 익명의 전화가 한 예다. 아파트 경비실, 상가에서도 주민을 곧잘 ‘사장님’ ‘사모님’으로 부른다. 겸연쩍다. 동네 주민이 다 사장일 리 없다.



 최근에는 ‘어머님’도 가세했다. 몇 가지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다. 간호사는 중년 이상의 환자를 너나없이 ‘아버님’ ‘어머님’으로 불렀다. ‘어머님, 조금 기다리세요’ ‘아버님, 수납부터 하세요’ 하며 안내했다. 사전을 찾아보면 제 부모도, 친구 부모도, 더구나 부모와 비슷한 나이도 아닌 이를 이렇게 부르는 건 맞지 않는 말이다. ‘어머님’ ‘아버님’은 직함 대신이 되기도 한다. 일부 TV 프로는 나이 지긋한 일반인 출연자의 이름을 ‘아무개씨’ 대신 ‘아무개 어머님’으로 자막에 표기한다. 이쯤 되면 출연자를 높이는 뜻은 둘째치고 화면에 나온 이가 ‘아무개’인지 ‘아무개의 어머니’인지도 헷갈린다.



 서비스업은 갈수록 높임말 과잉에 호칭 인플레다. 백화점 ‘손님’은 이제 ‘고객님’이다. 고객은 본래 호칭이 아니라 지칭이다. 사회 전체로도 비슷하다. 직함이 없는 이는 직업을 직함처럼 붙여주고, 호칭으로 부른다. ‘아무개 소설가’ ‘아무개 작가’ 하는 식이다. 그래도 애매할 때가 더 많다. 단적인 예가 식당·상점에서 일하는 이를 부를 때다. 이럴 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다름 아닌 ‘여기요/저기요’다. 2년 전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용실태조사 결과다. ‘여기요/저기요’는 한계가 뚜렷하다. 처음에 주의를 끌 때는 유용해도 상대를 이렇게 계속 부르며 말을 주고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말은 가족 관계의 호칭이 풍부하게 발달했다. 영어로는 다 ‘아저씨(uncle)’라도 우리말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부, 이모부가 엄연히 다르다. 가족관계가 그만큼 중요했던 시대의 반영이다. 사회는 달라졌다. 하루에도 숱하게 이름 모를 상대를 대한다. 적절히 존중하는 호칭이 절실한 이유다. 언어를 강제할 수는 없어도 다듬을 수 있다. 다채로운 우리말에서 전문가들이 후보를 발굴하고 사회적 논의를 벌여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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