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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티셔츠·바지 입은 임수경에 北 청년들 열광

중앙일보 2012.06.05 00:00 종합 3면 지면보기



탈북 백요셉 “나도 어릴 때 광팬”







































백요셉씨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에게 욕설·막말을 들은 탈북자 백요셉(28)씨는 페이스북에 “북에 있던 어릴 적부터 ‘통일의 꽃’ 임수경의 광팬이었다”고 적었다. 그것이 백씨가 먼저 임 의원에게 다가가 사진촬영을 요청했던 이유다. 임 의원이 밀입북했던 1989년에 백씨는 5살이었다. 임 의원이 북한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만 21살에 밀입북해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여대생 임수경은 남과 북 모두에 통제불능이었다. 임 의원은 그해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46일간 북한에 머물면서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반미를 말했다.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고 김일성과 두 손을 잡고, 북한 대학생과 “미국놈들 각오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임수경 의원이 1989년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에 입북해 평양축전에 입장할 당시 모습. [중앙포토]




그러나 북한의 통제에 갇히지도 않았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89년 8월 22일 “임수경의 자유분방한 행동이 김일성을 절대존엄의 존재로 터부시해 온 북한인들의 의식을 혼란시켰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에 뜻밖의 공을 세운 측면도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임 의원은 북한 간부 앞에서 권력세습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김일성이 친히 내린 선물인 ‘숄’을 자리에 그대로 놔둔 채 숙소로 돌아간 적도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나고 자란 그는 북한의 금기로부터 자유로웠다.



 북한 입장에서 보다 심각했던 건 임 의원의 티셔츠와 청바지였다. 북한 청년들은 아이돌을 보듯 임 의원에게 열광했다. 임 의원의 모든 소지품은 북한에선 고급이었다. 평양축전에는 흰색 티셔츠, 흰색 바지를 입고, 흰 운동화를 신고 입장해 눈길을 끌었다. 파쇼와 미 제국주의에 신음하는 남한의 불쌍한 인민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외신들은 “북한이 오히려 그녀의 장기체재를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민간인으로선 분단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걸어 내려왔다.



 북한은 ‘88년 서울 올림픽’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기획했다. 당시 북한 노동당이 주사파 지하조직에 투쟁지침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던 단파방송 ‘구국의 소리’를 통해 평양학생축전을 준비하라는 메시지가 전달했다. 주사파 4대 조직 중 하나인 조국통일(조통)촉진그룹이 한국 대표를 보내는 기획을 주도했다고 한다. 실행계획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에서 세웠다. 이들이 당시 내린 결론은 ‘상징성이 있고 해외 여행에 자유로운 여대생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공안당국의 감시를 벗어나기 위해선 운동권의 핵심 인물이 뽑혀선 안 됐고, 이 기준에 맞는 인물이 ‘임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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