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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양자 11명' 35세 女직장인, 건보료가…

중앙일보 2012.06.05 03:00 종합 4면 지면보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절반(50.6%)은 노인·실업자·주부·학생 등 일자리가 없는 미취업자, 13.7%는 임시직·일용직·무급 가족종사자였다. 반면 직장가입자는 모두 직장을 갖고 있거나 그런 사람의 가족들이다. 또 지역가입자에는 의사·변호사·약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한국노동패널(1만1734명)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지역건보료 내는 사람 절반이 일자리 없는데 … 미성년자 1명 늘어도 보험료 추가
불평등 건강보험료 Ⅱ <중> 지역가입자가 더 힘들다
건보공단·서울대 1만 명 분석

 건보공단 김필권 자격부과실장은 “일부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과 대형음식점·임대사업자 등이 소득을 줄여 신고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들은 직장가입자로 전환해 지역가입자로 남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지역 건보에는 노인·실업자·영세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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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조사에서 지역가입자들의 살림이 직장인에 비해 열악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역가입자 중에는 연간 소득이 1000만원(월 83만원)도 되지 않는 가구가 17.9%나 됐다. 직장가입자는 4.6%에 불과하다. 가구당 빚도 지역가입자는 4672만원(직장가입자는 3236만원)씩 지고 있지만 건보료를 부과할 때 빚이 있다고 납부금을 깎아주진 않는다.



 지역가입자의 상당수가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들 때문이다. 그들은 한때 지역가입자였다. 경남 거제시 A병원 원장 김모(48)씨는 세무 당국 조사에서 소득 축소 신고 사실이 드러났다. 소모품비를 부풀려 수입을 낮췄다. 김씨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다. 지난해 매달 178만원의 건보료를 냈지만 조사 이후 한 달에 3500만원 가까이 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재는 매달 202만원을 낸다.



 그동안 직장인 지갑은 ‘유리알’로 통했다. 하지만 176만여 명은 월급 외 소득을 올리고 있다. 임대·사업·금융 소득이다. 종합소득이 연간 7200만원 이상인 직장인 4만여 명만 9월부터 월급 외 소득에 건보료를 문다.



 지역가입자는 1988년 건보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종합소득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했다. 이 소득자료가 세무 당국에 확보된 사람이 지역가입자의 44%다. 나머지는 소득자료가 없다. 그래서 재산과 자동차에도 건보료를 부과해왔다.



 하지만 개인택시 기사 허진(60·서울 도봉구)씨는 “택시 미터기에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한 내역이 모두 기록돼 소득이 100%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득 건보료뿐만 아니라 99㎡ 아파트 건보료와 생활수준 건보료로 월 17만6620원을 낸다. 허씨는 “지역가입자 소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월 160만원을 버는 나한테 재산 건보료를 물리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허씨의 건보료에는 6만1200원(34%)의 생활수준(평가소득) 보험료가 포함돼 있다. 이 명목으로 지역가입자 631만 가구(지역가입자의 82%)가 지난해 약 2조원을 냈다.



 생활수준 건보료는 직장가입자에겐 없는 제도다. 과세소득이 500만원 이하인 지역가입자에게만 성별·연령·재산·자동차의 수준을 따져 생활수준 건보료를 매긴다. ‘이 정도 나이와 성별이면 이만큼 돈을 벌 수 있다’고 추정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인두세(人頭稅)적 시스템이다. 이게 저소득 지역가입자를 더 힘들게 한다. 미성년 자녀나 노인에게도 무조건 1인당 최저 3400원을 매긴다. 지역가입자인 50대 부부가 미성년 자녀 두 명을 부양하면 소득·재산·자동차 보험료와 별도로 2만3800원을 내야 한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의 5.8%(절반은 회사 부담)만 건보료로 내면 딸린 가족이 몇 명이더라도 보험료를 더 물지 않는다. 피부양자 제도가 있어서다. 피부양자에게 사업소득이 없고 금융소득이 연간 4000만원 이하면 된다. 가족 10여 명을 피부양자로 둔 직장인도 있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김선희(35·가명)씨는 남편과 자녀 2명에다 부모·시부모·할머니·시할머니·남동생까지 11명이 피부양자다. 건보료는 월 8만4600원(본인부담금 기준)만 낸다. 김씨가 지역가입자였다면 인두세 보험료만 최소 6만3000원 이상 나온다.



 부모가 여러 자녀 중 월급쟁이 자식을 쫓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최근 지역가입자가 된 김모(52·여)씨는 “내가 직장을 그만두자마자 피부양자로 있던 70대 친정어머니한테도 아파트 한 채 있다고 건보료가 월 수십만원 나왔다”며 “최근 재취업해 직장가입자가 된 오빠의 피부양자로 (어머니를)등록했다”고 말했다.



 일부 고액 자산가도 직장가입자인 자식의 피부양자로 얹혀 지낸다. 인천에 사는 지역가입자 박모(72)씨는 “옆집 사람은 한 달에 빌딩 임대료 수입만 수백만원인데 직장 다니는 자식에 (피부양자로) 얹혀서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다”며 “너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지역가입자 중 일부는 이런 불합리를 참지 못해 건보공단·국민권익위원회·청와대·보건복지부 등 기관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 중 18만4000가구는 5년 이상 건보료 6104억원을 체납하고 있다. 상당수가 건강보험을 이용하지 않고 사실상 제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10년 전부터 건보료 체납과 압류를 반복한 지역가입자 염영환(58)씨는 “나는 건강보험이 필요 없다. 보험료를 체납했다고 시집간 딸의 통장을 압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생활수준(평가소득) 건보료=지역가입자에게는 소득·재산·자동차를 평가해 점수화한 뒤 점수당 170원을 곱한 값을 보험료로 부과한다. 이 중 연간 과세소득이 500만원 이하이거나 소득자료가 없으면 건보공단이 생활수준을 따져 평가 소득을 산출한다. 생활수준 건보료는 성별과 연령, 재산(지방세 과표금액, 임차보증금·월세), 자동차(연간세액), 장애 정도를 반영하며 소득 50만원당 1점(170원)씩 보험료가 더해진다. 별도 보험료가 부과된 재산과 자동차가 생활수준 보험료 부문에서 다시 반영돼 이중부과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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