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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개 혜택 수급자가 독식 차상위계층엔 줄 게 없다

중앙일보 2012.06.05 01:28 종합 18면 지면보기
김모(68·경기도 안양시) 할머니는 지난해 기초생활수급 지원 신청을 했다가 탈락했다. 다섯 명의 자녀 중 직업 군인인 막내 아들이 부양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정돼서다. 할머니의 소득은 기초노령연금 9만원이 전부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55만3354원)에 훨씬 못 미친다. 약값이 떨어져 보름째 혈압약을 먹지 못하고 있다. 기초수급자보다 못한 생활이다. 김 할머니는 “의료비 지원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빈곤층 소득 역진 왜
‘통째로 수당’이 근본 원인
임대주택·난방비 지원 등
정부 몇 가지 대책 내 놔

 김 할머니처럼 자식 때문에 수급자가 못 된 차상위계층이 66만 가구(117만 명), 소득·재산 기준이 수급자의 1.2배 이하인 사람이 36만 가구(68만 명)에 달한다. 자식 관련 차상위계층은 한 달에 51만8000원, 소득 초과 차상위계층은 83만9000원을 번다. 기초수급자(87만5000원)에 훨씬 못 미친다. 정부의 ‘2010 빈곤 실태조사’는 그동안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소득 역진(逆進) 현상을 처음으로 입증한 것이다. 차상위계층은 소득만 적은 게 아니다. 사는 집의 면적이 최소 기준(1인 가구 14㎡)에 못 미치거나 주거비가 소득의 20%를 넘는 차상위계층의 비율이 수급자보다 월등히 높다. 교육비 부담도 166만원으로 수급자(105만원)보다 많다. 돈이 없어 치료를 중도 포기한 빈도도 더 잦다. 차상위계층은 2003년 전체 인구의 7.2%에서 2006년 5.04%로 줄다가 이번에 5.83%로 다시 증가했다.





 소득 역진 현상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통째로 수당’ 제도 때문이다. 2000년 10월 기초생보제를 도입할 때부터 이런 방식을 유지해왔다. 기초수급자는 생계·의료·주거 등 7가지 분야의 복지 지원을 받는다. 휴대전화 통화료 50% 감면, 전기요금 20% 할인, 영구임대주택 입주 등 크고 작은 혜택이 52가지다. 수급자에서 벗어나면 이런 게 거의 사라진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방식이다. 그래서 어떡하든 수급자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기를 쓴다. 일을 열심히 할 이유도 없다. 2000년부터 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는 ‘원년 수급자’가 23만4000가구에 달한다.



 정부는 4일 사회보장심의위원회 회의에서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몇 가지 소득 역진 대책을 내놨다. 근로장려세제(EITC) 대상을 넓히고, 차상위계층에게도 영구임대주택·난방비·이동전화요금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통째로 수당’ 제도를 쪼개 개별 수당으로 바꾸는 문제는 중장기 과제로 돌렸다. 문제는 돈이다.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박근혜 전 대표 주최 ‘한국형 고용복지 모형 구축 세미나’에서 여기에 2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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