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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수의 싱가포르뷰] 자본소득·증여세 없는 싱가포르 … 부유층 자금 ‘블랙홀’

중앙일보 2012.06.05 00:49 경제 9면 지면보기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개인 소득세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부유층에 대한 세금 부과가 늘고 있다. 부유층이 스위스 등 해외로 빼돌린 자산에 대해서도 과세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 중이다. 이렇게 되자 최근 미국이나 유럽 국적을 포기하는 부유층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이 쌓인 미국이나 유럽의 일반 국민에게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이러한 현상이 심해진다면 단순히 부의 유출에 따른 경제적인 타격을 넘어 심각한 사회·정치적 이슈로까지도 발전할 수 있다.



 자기 국가를 떠나고 싶어하는 부유층의 숫자는 중국 역시 만만치 않다. 지난해 중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본토 백만장자의 절반이 중국을 떠나고 싶어하고 이 중 14%가 이미 해외 이민을 위한 절차를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들이 중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과 사유재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들 대부분이 중국 부동산 경기 호황의 수혜자로, 이를 통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중국 밖으로 ‘현금화(cash-out)’하고 싶어 한다.



 ‘아시아의 스위스’를 표방하고 나선 싱가포르는 글로벌 부유층 이동의 최대 수혜국이 됐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해외 부유층이 낮은 개인 소득세율과 자본소득세·증여세 등이 없는 싱가포르로 유입됐다. 특히 정치적·문화적으로 가까운 중국 부유층의 유입이 급증하며 이들이 가지고 온 재산은 싱가포르의 외형적 경제 성장의 근간이 됐다. 지난 5년간 싱가포르 인구는 20% 증가했으며, 증가한 인구의 상당수에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 본토 등에서 건너온 부유층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부유층의 유입은 부유층을 빼앗기는 국가와는 또 다른 문제점을 낳고 있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는 31세의 한 중국인이 일반 도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페라리를 과속 운전하다가 택시를 들이받아 본인은 물론 택시 운전기사와 승객이 모두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사고 운전자는 4년 전 싱가포르로 이민을 온 중국 부유층의 자제로 알려졌다. 그가 운전하던 페라리의 가격은 143만 달러(약 17억원)다.



 단순한 교통사고로 묻힐 수 있었던 이 사건은 사고 당시의 동영상이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면서 파장이 커졌다. 이 사건은 부유층 외국인, 특히 중국인에 대한 싱가포르 사람의 적대심에 불을 붙였다. 사태 수습을 위해 지난주에는 싱가포르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희생당한 택시 운전사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의 생계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반외국인(특히 반중국인) 여론이 형성된 가장 큰 이유는 부유층 이민자 유입에 따라 싱가포르 국민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싱가포르 정부는 최근 외국인 이민자 허용을 제한하는 법률과 제도를 발표하며 민심을 달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싱가포르가 부유층 이민자 유입 정책을 포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떠나는 부자를 보면서 분노하는 미국 서민과 들어오는 부자를 보면서 박탈감을 느끼는 싱가포르 서민의 모습은 글로벌화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이는 양적 성장만큼이나 경제 체제의 질적 성장과 이를 통한 사회 안정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원칙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빈부의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부의 재분배 원칙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 사회도 고심해야 할 부분이다.



한홍수 KIARA 주식부문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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