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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임수경, 더 엎드려 사과해야

중앙일보 2012.06.05 00:59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
서울 인사동의 P술집에서 일어난 민주당 임수경 의원의 막말은 악성 중의 악성이다. 보편적 정서의 역린을 마구 건드렸다. 우선 “국회의원에게 개겨”라는 대목부터 갓 사흘 된 초선 의원의 권위주의가 묻어난다. 여기에 마음 편할 사람은 없다. 또한 “개념도 없는 탈북자 XX들아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어”라는 표현은 갈 데까지 갔다. 목숨을 걸고 넘어온 전체 탈북자를 매도하는 것이다. “하태경, 그 변절자 XX 내 손으로 죽여버릴거야”라는 욕설엔 섬뜩한 적개심이 깔려있다. 탈북 대학생 백요셉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도저히 40대 여성의원의 발언이라고 믿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임 의원의 정체성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임 의원은 두 차례 사과했다. 민주당도 황급히 봉합을 시도했다. 하지만 어설픈 헛발질이다. 우선 두 차례 사과는 비슷한 내용을 반복했을 뿐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사과문의 ‘북한 이탈 주민’이란 구절부터 눈에 거슬린다. 우리의 보편적 정서에는 탈북자라는 표현이 맞다. “임 의원이 충분히 사과를 했기 때문에 당 차원의 조치는 없다”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발언도 성급했다. ‘충분한 사과’라고 판단할 주체는 민주당이 아니라 바로 국민이다. 이러니 “막말 한 방으로 대선에서 200만 표 날렸다”는 민주당 내부의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파문은 휘발성이 강한 예민한 사안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의 어거지에 질려 있다. 국민의 70%가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사퇴를 바라지만 한사코 버티고 있다. 혹시나 하는 의혹의 눈초리가 민주당의 486에게 향할 무렵 터질 게 터졌다. 진보당의 경기동부연합이 예전 지하운동권의 상징이라면, 당시 전대협 의장 등 공개조직의 상층부는 대거 민주당의 486으로 변신했다. 적어도 국민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밖에 없는 구도다. 정치판에선 팩트보다 이미지가 훨씬 중요한 법이다. 당연히 종북(從北)이냐 아니냐를 묻게 돼 있다.



 P술집은 필자도 가끔 들르는 곳이다. 가볍게 맥주나 한잔 하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여주인과 종업원이 주방일까지 도맡는다. 임 의원도 이 집의 오랜 단골이다. 이혼을 하고, 아이를 잃었을 때, 그리고 해인사에 칩거할 때도 마음이 울적하면 이따금 들르곤 했다. 임 의원이 주사파(主思派)는 아닐지 몰라도, 주사(酒邪)는 좀 있다. 술에 취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한참 뒤에 다시 만나면 “저번에는 미안!”이라며 앙금을 풀었다. 모두들 그녀의 비극적 인생을 이해하는 쪽이었다. 원래 그 집 분위기가 그렇다.



 사고가 일어난 지난 금요일 밤. 손님은 딱 두 테이블뿐이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약간 전작(前酌)이 있던 임 의원은 보좌관과 맥주 2병을 마시던 중이었다. 동석한 운전기사는 아예 사이다를 시켰다. 임 의원과 백씨가 사진을 찍고, 아르바이트생이 스마트폰의 사진 3장을 지울 때까지도 별 일 없었다. 막말은 백씨가 탈북자임을 밝히고 “이럴 때 북한에서 바로 총살”이라 하면서 시작됐다. 이 대목에서 증언이 엇갈린다. 백씨는 “썰렁한 개그”라 했지만 “좀 자극적인 도발”이라고 목격자들은 기억한다. 폭언 뒤 임 의원은 바로 자리를 떴지만, 백씨 일행은 술집 주인·아르바이트생에게 몇 차례 사과를 받은 뒤 1시간 넘게 함께 술을 마시다 자정이 넘어 일어섰다. 바로 페이스북에 ‘…’으로 생략된 부분이다.



 어쩌면 임 의원에게 “술부터 끊어야 한다”는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쿨한 주문이 어울릴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 막말은 그냥 지나가기 어렵다. 아무리 취하고, 아무리 사석이라도 정치인이 처음 본 사람에게 자기 감정조절도 못한 채 추태를 부린 셈이다. 취중진심(醉中眞心)이란 의혹에서 벗어나기도 힘들다. 이번 일은 탈북자들에겐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통일을 지향하는 것과 종북(從北)을 분간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임 의원은 더 엎드려 사과해야 할 듯싶다. 탈북자들의 상한 마음이 다소나마 풀릴 때까지…. 그것 말고 다른 길은 안 보인다.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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