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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기준타수 치는 ‘올드 맨 파’ … 동반자 의식 말고 코스와 겨뤄야

중앙선데이 2012.06.02 23:39 273호 19면 지면보기
1892년 잉글랜드에서 ‘보기(Bogey)’란 개념이 등장했다. 당시 보기는 지금의 ‘파(Par)’와 같은 의미였다. 즉 홀별로 기준타수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통용됐다. 1912년에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에서 보기 플레이에 대한 규칙까지 발표했고 1920년에는 이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미국에서는 영국보다 앞선 1902년 스트로크 플레이에 ‘보기 경기’의 룰 적용을 승인했다.

박원의 비하인드 골프 <17>골퍼의 경쟁 상대

‘파’라는 개념이 실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890년대였는데 ‘보기’라는 용어와 중복이 되면서 인기를 얻지 못했었다. 원래 파도 보기처럼 홀별 기준타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에서는 점점 파가 보기보다 약간 더 좋은 성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결국 1946년에 미국골프협회(USGA)가 보기 경기라는 용어를 ‘파 경기(Par Competitions)’로 공식 변경하면서 ‘파’ 개념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1950년에는 R&A까지 ‘보기 혹은 파 경기’라는 표현을 도입했다. R&A와 USGA가 처음으로 골프 규칙을 공동 제정한 1952년에는 파 개념을 확정하고 그에 따른 스트로크 플레이 룰을 채택했다.

매치 플레이에서는 상대편 선수가 있고 스트로크 플레이에는 동반 플레이어가 있다. 그런데 파 개념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기준 스코어를 의식하며 플레이하게 됐다. 즉 파4 홀에서는 4타가 기준타수가 되며 4타 만에 홀 아웃하는 것을 목표로 플레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골프 규칙이 만들어진 역사를 살펴보면 분명 골프란 게임은 파라는 기준 스코어에 대한 도전이다.

늘 기준타수를 치는, 이기기 힘든 상대를 ‘올드 맨 파(Old Man Par)’라고 의인화한 개념도 나타났다. 1890년대 등장했던 잉글랜드의 ‘보기 맨(Bogey Man)’과 거의 같은 의미다. 다시 말해 골프가 다른 골퍼와의 경쟁이 아닌 올드 맨 파와의 경쟁임을 시사한 것이다.

“세상에 그 누구도 골프를 지배할 수 없으며 가장 좋은 스코어란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골프는 인간이 만들어 낸 위대한 게임이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게임이 아니다. 올드 맨 파와의 경기다. 올드 맨 파는 무척 인내심이 강한 영적 존재인데 버디나 버자드(Buzzard·20세기 초에 사용. 지금의 ‘더블보기’)는 절대 기록하지 않는다. 올드 맨 파와 오랜 시간 라운드를 하려면 우리 역시 엄청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1930년 28세의 나이로 역사상 유일하게 그랜드 슬램을 기록한 보비 존스(사진)의 말이다. 존스는 골프란 기준타수와의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골프란 참 아이러니한 게임이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는 절대 그들을 이기는 데 집중해서는 안 된다. 골프란 상대편의 플레이와 스코어 등 변수와의 싸움이 아니라 변함없는 상수인 골프 코스와의 게임이다.

하지만 우리 골퍼들은 대체로 상대편을 의식하고 그들을 이기기 위한 플레이를 한다. 2002년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을 지켜본 잭 니클라우스도 존스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니클라우스는 “모든 선수들이 골프 코스를 상대로 자신만의 게임을 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리더보드를 계속 보면서 우즈를 의식하며 플레이한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우즈는 골프 코스를 자신만의 게임으로 상대했다. 그게 골프다”라며 골프가 올드 맨 파와의 경기임을 강조했다.

골프의 거장 계보를 잇는 존스, 벤 호건, 니클라우스 같은 선수들은 한결같이 골프를 자신과 골프 코스의 개인적인 경기로만 여긴다. 근본적으로 골프가 경쟁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동반 플레이어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올드 맨 파, 그것만이 골퍼의 영원한 상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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