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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의 비하인드 골프 <17>골퍼의 경쟁 상대
1950년에는 R&A까지 ‘보기 혹은 파 경기’라는 표현을 도입했다. R&A와 USGA가 처음으로 골프 규칙을 공동 제정한 1952년에는 파 개념을 확정하고 그에 따른 스트로크 플레이 룰을 채택했다.
매치 플레이에서는 상대편 선수가 있고 스트로크 플레이에는 동반 플레이어가 있다. 그런데 파 개념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기준 스코어를 의식하며 플레이하게 됐다. 즉 파4 홀에서는 4타가 기준타수가 되며 4타 만에 홀 아웃하는 것을 목표로 플레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골프 규칙이 만들어진 역사를 살펴보면 분명 골프란 게임은 파라는 기준 스코어에 대한 도전이다.
늘 기준타수를 치는, 이기기 힘든 상대를 ‘올드 맨 파(Old Man Par)’라고 의인화한 개념도 나타났다. 1890년대 등장했던 잉글랜드의 ‘보기 맨(Bogey Man)’과 거의 같은 의미다. 다시 말해 골프가 다른 골퍼와의 경쟁이 아닌 올드 맨 파와의 경쟁임을 시사한 것이다.
“세상에 그 누구도 골프를 지배할 수 없으며 가장 좋은 스코어란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골프는 인간이 만들어 낸 위대한 게임이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게임이 아니다. 올드 맨 파와의 경기다. 올드 맨 파는 무척 인내심이 강한 영적 존재인데 버디나 버자드(Buzzard·20세기 초에 사용. 지금의 ‘더블보기’)는 절대 기록하지 않는다. 올드 맨 파와 오랜 시간 라운드를 하려면 우리 역시 엄청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1930년 28세의 나이로 역사상 유일하게 그랜드 슬램을 기록한 보비 존스(사진)의 말이다. 존스는 골프란 기준타수와의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골프란 참 아이러니한 게임이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는 절대 그들을 이기는 데 집중해서는 안 된다. 골프란 상대편의 플레이와 스코어 등 변수와의 싸움이 아니라 변함없는 상수인 골프 코스와의 게임이다.
하지만 우리 골퍼들은 대체로 상대편을 의식하고 그들을 이기기 위한 플레이를 한다. 2002년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을 지켜본 잭 니클라우스도 존스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니클라우스는 “모든 선수들이 골프 코스를 상대로 자신만의 게임을 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리더보드를 계속 보면서 우즈를 의식하며 플레이한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우즈는 골프 코스를 자신만의 게임으로 상대했다. 그게 골프다”라며 골프가 올드 맨 파와의 경기임을 강조했다.
골프의 거장 계보를 잇는 존스, 벤 호건, 니클라우스 같은 선수들은 한결같이 골프를 자신과 골프 코스의 개인적인 경기로만 여긴다. 근본적으로 골프가 경쟁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동반 플레이어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올드 맨 파, 그것만이 골퍼의 영원한 상대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