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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인 블루’로 크로스오버 뮤직 시대 열다

중앙선데이 2012.06.02 23:38 273호 28면 지면보기
위키디피아
20세기 이전까지 미국은 거의 클래식 음악의 불모지였다. 그러다 19세기 말 동유럽 출신 유대인 음악가들이 대거 미국에 들어오면서 미국 음악계는 활기를 띠게 됐다. 유대인은 음악이라면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가리지 않고 천부적 재능을 발휘한다. 그들의 기질이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오랜 기간 유럽 각국에서 박해를 받으며 체득한 고난에 찬 감성이 음악적 해석과 기교에 강점을 갖게 만들었다고도 한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아메리칸 클래식 창조한 조지 거슈윈

어린 시절 문제아 피아노 배우며 달라져
유럽에서 건너와 미국 고전음악의 1세대를 이룬 유대인 작곡가로는 스위스 태생의 에른스트 블록, 독일 태생의 쿠르트 바일, 리투아니아 출신의 아론 코플랜드 등을 들 수 있다. 조지 거슈윈(사진)은 미국 토속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을 결합시켜 ‘아메리칸 클래식’을 창조한 인물이다. 그는 1898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어머니는 러시아 태생 유대인이다. 거슈윈은 어린 시절 다루기 힘든 문제아였다. 그러나 열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품성이 순화됐다. 16세가 되자 고교를 중퇴하고 악보 출판사에서 근무하며 재즈를 접했다. 작곡도 배웠다. 그랜드캐년 모음곡을 작곡한 페르데 그로페의 도움을 받았다. 또 당대 최고의 대중음악 작곡가인 러시아 태생 유대인 어빙 벌린(‘화이트 크리스마스’ 작곡)의 영향도 받았다. 1919년 거슈윈은 그의 첫 히트곡 스와니(Swanee)를 발표했다. 리투아니아 태생 유대인으로 당대 인기가수였던 앨 욜슨이 불러 널리 알려졌다.

1924년 거슈윈은 그의 평생 대표작 ‘랩소디 인 블루’를 내놓았다. 당대 재즈계의 대부였던 폴 화이트먼의 발상으로 작곡한 것이다. 관현악 파트는 그로페가 완성시켰다. 형식은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광시곡이지만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스윙, 블루스 재즈, 유대 전통음악, 흑인 민속음계, 그리고 유럽의 고전음악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도저히 접목이 어려워 보이던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묶은 최초의 심포닉 재즈다. 도입부인 클라리넷 글리산도는 동유럽 유대 전통음악 클레츠머와 스윙풍이 합쳐진 것이다. 그해 2월 12일 뉴욕에서 초연을 했다. 거슈윈은 직접 피아노를 치며 화이트먼 재즈악단 그리고 팔레 로열 교향악단과 협연했다. 이후 이 곡은 아메리칸 클래식의 상징이 됐다. 84년 신냉전 시대에 열린 LA 올림픽은 소련과 동유럽권이 보이코트한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다. 그런데 이 올림픽 개막행사의 오프닝 곡으로 랩소디 인 블루가 연주됐다. 70여 대의 피아노가 동시에 이 곡을 연주하는 장관을 이뤘다.

1925년엔 피아노 협주곡 F(바)장조를 발표했다. 이 곡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는 이 협주곡 1, 3악장을 편곡해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거슈윈은 1928년 파리로 갔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에게 지도를 부탁하기 위해서다. 라벨도 자신의 환상곡 ‘어린이와 마술’에 재즈를 가미한 적이 있다. 라벨은 거슈윈 음악이 완숙기에 접어들었다고 치켜세우곤 정중하게 그의 청을 거절했다. 거슈윈은 프랑스 현대음악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에게도 같은 청을 했다. 메시앙도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며 사양했다. 거슈윈은 파리 체류 중 ‘파리의 미국인’이란 교향곡을 썼다. 1931년 ‘그대를 위해 노래 부르리(Of Thee I Sing)’란 뮤지컬을 발표한 후 퓰리처상을 받았다. 1935년엔 뒤 보즈 헤이워드의 소설 ‘포기’를 뮤지컬로 만든 ‘포기와 베스’를 작곡했다. 흑인 여성이 아이에게 불러주는 노래 ‘서머타임’은 이 뮤지컬의 백미며, 이 곡은 이후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의 하나가 됐다. 거슈윈은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괴팍한 성격의 외톨이였던 거슈윈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말년엔 주로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미술에도 소질이 있어 틈틈이 그림도 그렸다. 1937년 뇌종양 제거 수술 중 3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거슈윈은 미국 음악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유럽 고전음악에 열등감을 갖고 있던 미국 음악계의 자존심을 살렸다. 클래식을 미국 대중음악과 결합해 아메리칸 클래식악풍을 창조했다. 이를테면 오늘날 ‘크로스오버’ 뮤직의 선구자였다. 이후 미국엔 그와 유사한 시도를 한 대가가 많이 있었다. 1950~60년대 보스턴 팝스 악단을 지휘했던 아서 피들러도 그중 한 명이다. 피들러는 클래식을 크로스오버식으로 편곡·연주해 고전음악을 대중화시켰다.

바로크 음악도 초창기엔 천시당해
우리 클래식 음악 매니어들 중 일부 순혈주의자들은 크로스오버 뮤직을 천시한다. 고전음악을 오염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실상은 그들만의 영역을 고수하려는 배타적인 사고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바로크 음악도 초기엔 유럽 각지에서 저급한 음악이란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50년이 지나자 바로크는 한 시대 고전음악 악풍으로 정착됐다. 한동안 미국에서도 활동한 적이 있는 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도 개방적인 시도를 했다. 그는 모국인 보헤미아 음악에 미국 인디언 음악 음률을 섞어 유명한 교향곡 ‘신세계에서’를 작곡했다.

문화, 예술은 대중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존재가치를 극대화한다. 대중이 사랑한다면 구태여 품격을 따질 이유가 없다. 레게, 헤비메탈, 랩, 힙합도 초기엔 냉대를 받았지만 이제는 어엿한 대중음악이 됐다. 일부 고전음악 애호가들이 배척하는 크로스오버 뮤직도 세월이 지나면 클래식 음악의 한 악풍으로 대접받을지 모른다. 거슈윈의 음악이 이젠 클래식 음악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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