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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니 콩보다 구별하기 힘든 닮은꼴, 양성자

중앙선데이 2012.06.02 23:37 273호 28면 지면보기
지하철을 탄다. 차 안엔 승객들이 꽉 차 있다. 학생, 아가씨, 중년신사, 노인 등 다양하다. 문득 소립자의 세상이 궁금해진다. 그들의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소립자란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 원자핵보다 작은 기본적 미립자다. 이들의 세상은 전철 속처럼 다양하지 않다. 그와는 정반대로 양성자는 모두가 똑같다. 가마니 속 콩알보다 더 구별이 안 될 만큼 똑같다.

김제완의 물리학 이야기 소립자 세계


질량(무게)이 1.6726485×10-27 kg인 것도 꼭 같고, 1.6021892×10-19 쿨롱의 전기량을 갖고 있는 것도 똑같다. 양성자는 모두 1초에 1022번 회전한다. 더 늦거나, 더 빨리 도는 것도 아니어서 회전하는 양성자는 구별되지 않는다. 모두 똑같은 입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두 양성자가 서로 자리를 바꿔도 이를 알 수도 없고 알 길도 없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상태를 ‘치환 대칭성이 있다’고 한다. 소립자가 하나같이 같아서 치환해도 외형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아무 차이도 없기 때문에 이런 분야는 할 수 없이 수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다 알겠지만 치환이란 바꾸는 것이다. 두 개의 대상이라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복잡한 수학적 개념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A와 B를 한 번 치환하면 B와 A가 된다. 한 번 더 치환하면 다시 A와 B가 된다. 다시 말해 대상이 두 개일 때 두 번 치환하면 원상복귀된다. 치환을 제곱해도 제곱하기 전과 같다는 것인데 이를 숫자로 표현하면 ‘1’이다. 1은 어떤 숫자에 곱해도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8×1도 8이고 100×1도 100이요, 1000×1도 1000인 것처럼 1은 곱하건 곱하지 않건 차이가 없다. 치환을 두 번 하면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수학자들은 이런 경우에 ‘치환의 제곱은 1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제곱해서 +1이 될 수 있는 숫자는 두 개다. +1의 제곱도 +1이지만 -1의 제곱도 역시 +1이다.

바보스러운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같겠지만 이런 성질은 소립자 세계에서 너무나 중요한 원리다. 요약해 말하면 소립자들은 치환 대칭성이 있는 까닭에 모든 소립자들은 ‘치환에 대해 -1이 되는 것’과 ‘치환에 대해 +1이 되는 것’으로 분류된다. 전자를 ‘페르미온’, 후자를 ‘보존’이라 부른다. 페르미온이나 보존은 모두 회전하는 성질, 즉 ‘스핀(Spin)’을 갖는다. 똑 떨어지지 않는 반정수로 스핀하는 것이 페르미온이고 0, 1, 2, 3… 등 정수로 되는 것이 보존이다. 너무 어려우니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그렇다고만 여기면 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기본적 소립자 가운데 주변 물질을 이루는 소립자의 주종인 양성자, 중성자와 전자는 치환에 대해 -1로 표현되는 페르미온이며 빛의 기본 알갱이인 광양자, 중력을 전달하는 중력양자 등은 +1로 표현되는 보존이다. 보존은 생겼다 없어질 수도 있지만 페르미온은 전체 숫자가 일정하다.

빛은 보존으로 구성돼 있는데 검은색 표면에 흡수돼 없어지면서 온도를 높이지만, 페르미온으로 구성된 물질은 다른 물질이 돼도 전체적 양은 변하지 않는다. 좋은 예가 얼음이다. 녹아서 물이 돼도 무게는 그대로다. 옛 과학자들은 이를 ‘물질 불변의 법칙’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페르미온은 ‘물질의 기본 입자’이고 보존은 ‘힘을 전달하는 기본 입자’다.

그런데 1974년 독일 물리학자 베스(Julius Wess·1934~2007·사진)와 이탈리아 물리학자 즈미노(Bruno Zumino·1923~)가 획기적인 이론인 ‘초대칭 이론’을 들고나왔다(일본·소련에서 1971년 비슷한 이론이 발표됐지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그들의 초대칭 이론에 의하면 페르미온이 있으면 그에 대응되는 보존이 꼭 있어야 하며, 보존도 마찬가지다. 빛의 알갱이인 광양자(포톤, 보존)에는 대응하는 페르미온 포티노가 있어야 하고, 페르미온인 뉴트리노가 있으면 반드시 대응하는 뉴트랄리노(보존)가 있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세계 최대의 가속기 LHC는 ‘신의 입자’와 이 초대칭 입자를 찾아내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초대칭성이 맞다면 페르미온과 보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물질과 힘의 구별도 더 모호해진다.

이렇게 어려운데 요즈음 물리학자들은 ‘제곱해서 +1이 되는 것 외에도 네제곱해야 +1이 되는 것에 해당하는 입자’까지 연구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네 번 거듭 곱해야만 +1이 되는 숫자를 허수(수학에서는 i로 표시된다)라고 하는데 이런 성질을 가진 입자를 ‘에니온’이라고 한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에니온이 고온초전도체의 원인이 되는 입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눈에 안 보이는 세계의 ‘똑같이 닮은 단조로움’이 우리들이 사는 현상계의 복잡함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게 놀랍다. 수학이 만든 헛된(?) 허수마저 우리 생활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신기하다. 필자는 지하철 승객들과 소립자의 집단을 연결시켜보며 ‘물리 하는’ 재미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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