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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연인의 후손

중앙선데이 2012.06.02 23:35 273호 29면 지면보기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 부부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한국을 국빈 방문하고 돌아갔다. 스웨덴 왕실은 그의 할아버지인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왕세자 때인 1926년 신혼여행 중 경주에서 서봉총 발굴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혼여행 중 미지의 나라에서 신랑이 찬란한 황금관을 발굴한 것은 왕세자빈에겐 로맨틱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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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16세 부부도 로맨스로 유명하다. 72년 뮌헨 올림픽 VIP였던 스웨덴 왕세자는 통역 실비아 조머리아트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실비아는 독일인 사업가 아버지와 브라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76년 성사된 결혼은 왕족과 평민의 만남으로 화제를 불렀다. 전야 행사에선 그룹 아바(ABBA)가 그 유명한 노래 ‘댄싱 퀸’을 초연하고, 미래의 왕비 실비아에게 노래를 헌정했다.

사실 국왕의 직계 조상은 2세기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한 ‘사랑과 복수’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1810년 스웨덴 베르나도테 왕조를 창설한 칼 요한 14세(프랑스 이름은 장 밥티스트 쥘 베르나도트·1763~1844)는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육군 원수였다. 왕비는 ‘나폴레옹의 영원한 연인’으로 불리는 데지레 클라리(1777~1860)였다. 마르세유의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이다. 코르시카 섬에서 마르세유로 옮긴 보나파르트 가문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의 형 조제프가 데지레의 언니 줄리와 결혼하면서 클라리 가문과 사돈이 됐다. 나폴레옹은 데지레와 약혼했으나 파리에 간 뒤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사교계 여왕인 조세핀과 결혼했다. 파혼 사건으로 평생 데지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나폴레옹은 그의 남편인 베르나도트 장군의 뒤를 돌봐줬다. 하지만 정작 데지레는 베르나도트가 반(反)나폴레옹 성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베르나도트에게 스웨덴 의회는 국왕 승계 의사를 물어왔다. 당시 스웨덴은 러시아에 패해 수백 년 지배해 오던 핀란드를 잃는 등 국가적 위기에 처했다. 귀족들의 쿠데타로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 4세가 쫓겨나고 숙부인 칼 8세가 즉위했다. 하지만 그는 자손이 없는 노인이었고 의회가 그의 후임으로 뽑은 덴마크 왕자도 그해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스웨덴 의회가 유럽을 지배하던 나폴레옹이 좋아할 만한 인물로 후임을 뽑기로 한 것이다. 과거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혔던 스웨덴 군인들이 베르나도트를 추천했다. 나폴레옹이 어쩔 수 없이 그를 도울 수밖에 없다는 기막힌 상황을 외교에서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결국 나폴레옹의 승인·지원 아래 베르나도트는 스웨덴에 새 왕실을 열었다. 종교를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바꾸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는 결국 반프랑스 동맹에 가담해 나폴레옹 몰락에 힘을 보탰다. 사랑과 복수의 대(大)드라마다. 그런데 남편보다 16년을 더 산 데지레가 운명하던 순간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나폴레옹”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최종 결론은 결국 복수가 아니라 로맨스였다. 스웨덴 왕실이 국민 지지를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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