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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전환점, 2002 월드컵

중앙선데이 2012.06.02 23:30 273호 30면 지면보기
이 칼럼에서 나는 주로 비판을 한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비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이런 표현은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싫어하는 걸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것이다. 난 그저 여기에 오래 살고 싶어 하고 여러 일에 관여하고 싶은 한 인간으로서 비판을 하고 있다. 비판은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읽기에도 재미있다. ‘모든 것이 좋다, 걱정할 것은 없다’라고 쓰는 기자가 있다면 이 일을 오래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오늘만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원래는 승려 도박 파문과 의심스럽고 돈 많은 대형 교회 목사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번 주가 2002년 한·일 월드컵 10주년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내가 한국과 사랑에 빠진 지 10년이 됐다는 얘기다. 2002년 5월 나는 이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달 후 난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관광객 신분으로 도착해 거의 종교적 개종을 하고 이곳을 떠났다. 그 짧은 2주간에 느꼈던 훈훈함, 가능성 그리고 순수한 즐거움을 경험한 적이 내 평생 없었다.

당시에 나는 월드컵을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하는 시각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아시아 밖에서 한국은 심각한 사건들로 알려진 나라다. 전쟁의 비극과 분단, 폐쇄적인 ‘은둔의 왕국’ 딱지, 이후 경제 기적과 97~98년 경제위기…. 월드컵은 한국의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게 한 첫 사건이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88년 서울 올림픽을 ‘한국의 졸업파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진정한 포인트는 그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은 위에서 조직해 아래로 하달되는 행사다. 한 나라의 이미지를 세계 무대에 과시하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에게 호소력이 있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도 그랬듯). 국제축구연맹(FIFA)을 둘러싼 추문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은 진정한 대중의 축제다. 육상 남자 100m 결승을 보려고 시청 앞에 100만 명이 모여들거나, 국가대표 수영팀을 응원하기 위해 해외로 단체응원을 다니진 않는다. 영국의 보통 사람에게 런던 올림픽은 그저 큰 하품을 선사할 뿐이다. 서울 올림픽 때도 한국이 그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국가라는 인상을 준 것처럼.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은 한국에 흥겹고 붉게 칠한 인간의 얼굴, 멋지고 흥미로운 국가 이미지를 갖게 만든 전환점이었다. 한국인들이 외국인을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도 바로 이때다. 한국은 외세로 인한 아픈 경험을 많이 겪은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 경험은 국가의식에 강하게 각인돼 있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인과 비(非)한국인들이 우호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지난해 축구 스타 홍명보씨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주변 친구들에게 홍명보란 이름을 얘기할 때 한국 정치인들을 거명할 때와 달리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환해졌다. 스페인전의 페널티킥, 폴란드전의 완전한 승리.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순간이었기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독자들은 이렇게 내 얘기와 1인칭이 가득한 평이한 칼럼을 쓰는 것을 용서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2002년 6월 내 인생이 바뀐 것을 얼마나 행운이라고 느끼고 있는지 표현하고 싶었다. 그토록 역사적이고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즐거웠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데 대해 말이다. 늘 바쁘지만 그럼에도 고독한 세상에서 우리는 때로는 즐겨야 하고 때로는 미쳐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이들과 연대하는 감정을 느껴봐야 한다. 나 자신보다 거대한 어떤 것에 대한 동질감 같은 것 말이다. 난 정확히 10년 전,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나라에서 이런 것을 느꼈다.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2010년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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