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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도시락

중앙선데이 2012.06.02 23:25 273호 31면 지면보기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 도슭 부시고 곰방대를 톡톡 떨어 닢담배 퓌여 물고 코노래 조을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제 어깨를 추이르며 긴 소래 저른 소래 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린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시조 중 한 구절이다. 여기에 나오는 ‘도슭’은 도시락이다.

인류문명사는 어쩌면 먹을거리 확보 과정이다. 인간에겐 시간·장소에 관계없이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큰 관심거리다. 그래서 조리된 음식을 그릇이나 바구니에 담거나 풀잎 또는 종이에 싸서 갖고 다니다가 시장하면 배를 채웠다. 도시락의 기원인 셈이다. 요즘은 도시락 종류가 너무 많아 ‘세계의 도시락’을 소개하는 책까지 나온 지경이다. 음식은 물질적 재료뿐만 아니라 무형의 문화와 역사가 버무려져 완성되는 ‘사회적 요리’다.

우리 세대에 어릴 적 도시락은 ‘체험하는 사회교과서’였다. 성차별과 빈부격차, 그리고 ‘계급의식’까지도 도시락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여동생과 뒤바뀌어서 잘못 들고 간 도시락엔 늘 한가운데 자리하던 계란 프라이가 빠져 있었다. 오십 줄의 여동생은 지금도 어머니의 아들 편애에 배신감을 토로한다.

양은 도시락통과 달리 반찬 칸까지 따로 있는 플라스틱 도시락, 따뜻한 밥과 국물의 온기를 그대로 품은 보온도시락, 점심시간마다 가정부 아주머니가 막 지은 따끈한 밥과 숭늉까지 배달했던 부잣집 친구의 도시락을 보며 세상이 고르지 않다는 것을 그때 이미 감 잡았다. 가난한 살림에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수돗가에서 물을 마셔 배를 채우던 학생들 가운데 출세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들 중에 혹시 ‘도시락 접대’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어릴 적 ‘도시락 트라우마(trauma)’가 잠재의식 속에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도시락 접대’는 성(性) 접대부가 술·안주를 도시락으로 싸들고 사택을 방문해 성 접대를 하는 걸 의미한다. 인천 옹진군 영흥도 영흥화력발전소가 고장으로 발전 중단이 되었다가 재가동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이후 영흥화력본부 임직원들이 화력발전소 증설 사업을 따내려던 하청업체들로부터 도시락 접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기를 바라지만 세상사 누가 알 것인가? ‘도시락 트라우마’와 부패의 ‘먼 인과성’을 밝힐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복잡계 이론에서 강조하는 비(非)선형적인 인과론에 따르면 못 밝힐 일도 아닐 성싶다. 대나무 그릇의 밥과 표주박 물을 뜻하는 단사표음(簞食瓢飮)의 고사에서처럼 검소함과 소박함으로 각인돼 있는 도시락이 지금은 부패의 도구로까지 활용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넋을 잃는다.

부패는 시간이 갈수록 끊임없이 변종을 만들어내면서 진화하고 있다. 부패의 공연무대에 동원된 소품에는 고등어가 있었다. 고등어를 일본어로 ‘사바’라 한다. 고등어 두 마리를 뇌물로 바쳐 일을 성사시킨다는 의미로 ‘사바사바’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 단계의 부패는 덜 타락했다고 할까? 이후엔 백화점 쇼핑백, 사과상자, 옷, 그랜저, 벤츠가 나오더니 급기야는 부패의 파노라마에 옛 추억이 서린 도시락까지 소품으로 등장했다. 도시락 부패의 본질은 성의 물화(物化)를 통한 뇌물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데 있다. 부패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패를 제어할 묘책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 부패의 내성(耐性)은 더 강해지고 있다. 부패의 진화를 멈추게 해야 한다. 잘못된 정치와 경제 때문에 나라가 잠시 망할 수 있지만, 부패한 나라는 ‘반드시’ 그리고 ‘완전히’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부패의 갈라파고스로 변하고 있다.



강성남 서울대 행정학 박사. 한국사회과학협의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보사회와 행정』『관료부패의 통제전략』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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