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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영인이 체질 대수술, 빅3 중 먼저 위기 탈출

중앙선데이 2012.06.02 23:08 273호 24면 지면보기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 위치한 포드박물관은 자동차를 통해 인간의 생활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대중차 시대를 연 모델 T부터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타던 49년형 머큐리까지 200여 대의 차량이 전시돼 있다. 기자의 눈길을 끈 차는 소형버스를 개조해 만든 1930년대 캠핑카(오른쪽 위 작은 사진)다. 그 시절에 포드는 취사시설이 딸린 캠핑카를 판매했다. [사진 포드코리아]
지난달 22일 미국 미시간주 포드자동차(이하 포드·Ford) 본사는 경축일이었다. 창업자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 이사회 회장은 “타원형의 푸른색 포드 로고는 우리의 유산”이라며 “내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감격해했다. 무슨 일이었을까. 자동차 왕국 포드가 그동안 담보로 잡혔던 포드 로고를 되찾은 것이다.

김태진 기자의 Car Talk 브랜드 이야기 ⑪ 포드

포드는 경영악화로 2006년 은행에서 230억 달러를 긴급 대출받아 파산 위기를 넘겼다. 로고와 미국 사업장, F-150 픽업트럭 및 머스탱 스포츠카 사업을 담보로 잡혔다. 금융채권단은 돈을 빌려주면서 3대 신용평가 회사 가운데 두 곳에서 투자등급을 회복해야 담보를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지난달 피치와 무디스가 포드에 투자적격 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아직도 미국 1위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는 투자부적격 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벤츠가 신기술과 고급차의 역사라면 포드는 자동차 역사 그 자체다. 20세기 초반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가장 미국적인 차를 만들어왔다. 포드 차는 실용적이고 편안하다. 트렁크와 스위치는 큼지막하고 시트는 푹신하다. 장거리를 달리도록 대형 엔진과 대용량 에어컨을 달았다.

올해 출시돼 포드의 대변혁을 예고한 SUV 이스케이프(사진1)와 세단 퓨전(사진2). 포드 로고를 가리고 ‘어떤 브랜드냐’고 물어보면 상당수가 독일차나 한국차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섹시한 디자인뿐 아니라 인테리어 소재도 고급스러워졌다. 특히 퓨전은 2억원대 애스턴 마틴을 닮았다. 아쉬운 것은 미국차 특유의 푹신한 승차감이 사라진 점이다. 점점 유럽 차처럼 핸들링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미국 차의 가장 큰 특징으로 ‘편안함’을 꼽는다. ‘쇼퍼 드리븐(운전 기사를 두고 뒤에 타는 차)’ 차라면 미국 차의 쓰임새가 좋다. 지난해 단종된 포드 링컨 타운카가 대표적이다. 길이 5m가 넘는 데다 4.6L V8 엔진을 달아 연비는 나쁘지만 승차감 하나는 기막히다. 픽업트럭용 강철 프레임 차체를 썼는데도 서스펜션이 매우 부드럽다. 기자의 장모는 평소 가족여행 때 뒷좌석 가운데 앉아 운전 잘하는지 ‘감시’한다. 또 세상 풍경이 궁금해 조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2003년 링컨 타운카로 강원도를 여행했을 때는 어찌나 승차감이 편안했는지 처음으로 차 안에서 주무시는 걸 봤다. 빨리 달려야 시속 120㎞로, 브레이크는 서서히 나눠 밟아야 하는 차다. 뒷좌석에서 살짝 창문을 열고 궁금한 눈빛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재미를 즐기기에는 미국차만 한 것이 없다.

대신 미국 차는 화려하거나 섬세하지 않다. 조립 품질이 엉성해 범퍼와 차체 사이에 엄지손가락 하나가 쑥 들어갈 만한 틈새가 여럿 보일 때도 있다.(적어도 2009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그렇다고 물이 새거나 하는 큰 결함은 없다.

포드의 역사는 자동차 역사다. 자동차 기술자였던 헨리 포드는 1896년 자전거 바퀴에 2기통 휘발유 엔진을 장착하고 4륜 마차의 차대를 얹었다. 처음 만든 자동차였다. 그는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예감하고 1903년 6월 디트로이트에서 11명의 직원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오늘날 연 매출 200조원 포드 그룹의 시작이다.

1908년 대중 차의 기념비인 ‘모델 T’가 나온다. 4기통 2.9L 엔진을 달고 20마력에 최고 속도는 68㎞를 냈다. 놀라운 점은 가격이다. 당시 경쟁 차는 2000달러가 넘었는데 T는 825달러였다. 평균 근로자 6개월치 월급 수준이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방식 덕분이었다. 경영학자들은 이를 ‘포드 생산방식’ 또는 ‘포디즘(Fordism)’이라고 명명해 지금까지 가르친다. 1924년이 되자 미국에서 1000만 대의 T가 도로를 메웠다. 당시 미 등록 차의 절반이었다.

포드는 22년 링컨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고급차 시장에 진출했다. 포드의 명차라는 링컨 콘티넨털의 토대다. 헨리 포드의 장남인 에드셀 포드가 자신이 타고 다닐 차로 제작한 대형 세단이다. 이후 콘티넨털은 미 대통령의 전용차로 명성을 날렸다. 70년대까지 미국의 ‘보수적 부자 차’로 통했다.

자유분방한 미 청년 문화의 아이콘 머스탱(mustang·야생마)은 64년에 나왔다. 당시 미국 가정은 성인 한 사람마다 한 대씩 차를 구입하는 세컨드 카가 확산됐다. 포드 상품담당 임원이던 리 아이어코카(훗날 크라이스러 회장이 된다)는 생애 첫 차를 구입하는 대학생을 겨냥했다. 젊은 층의 라이프스타일과 구매력에 맞춰 소형 스포츠카로 제작했다. 머스탱은 야생마 중 작은 조랑말(pony)에 비유되면서 ‘포니 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디자인도 젊은이들의 기호품인 코카콜라 병처럼 곡선을 많이 썼다. 젊은이가 있는 곳에는 머스탱이 늘 따라다녔다. 머스탱 대박이 나자 GMㆍ크라이슬러에서도 비슷한 소형 스포츠카를 내놨다. 크고 비싸서 레이싱에서나 볼 수 있던 스포츠카가 가정의 애마로 파고든 것이다. 이후 머스탱은 진화를 거듭해 500마력 이상 출력을 내는 대형 엔진을 단 미국 머슬카(고출력 차)의 상징이 됐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GMㆍ포드의 경쟁력이 일본·독일 업체보다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조직문화를 빗대 유행했다. 사무실에 뱀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까 하는 우스갯소리였다. 오너가 없고 명문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이 득세하는 GM은 뱀을 잡기 위해 먼저 회의를 한다. 이후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안전하게 뱀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뱀 잡는 과정에서 다칠 때를 대비해 보험에 든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풍토를 비꼰 것이다. 포드는 창업일가가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 회사다.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형적 톱다운 조직문화다. 대신 조직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경직된 면이 있다. 포드는 우선 실무자들이 뱀을 어떻게 잡을지 회의를 열고 간부에게 보고한다. 간부급끼리 또 회의를 하고 경영진에 보고한 뒤 명령을 기다린다. 이윽고 지시가 떨어지면 신속히 움직인다.

이런 조직을 바꾸고자 빌 포드 회장은 2000년대 칼을 빼들었다. 보잉 출신 앨런 멀럴리를 영입해서다. 멀럴리는 우선 ‘회의로 입사해서 회의로 퇴사한다’는 포드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시간만 끌고 능률을 저하시키는 ‘회의를 위한 회의’를 근절했다. 부서별로 1~2년씩 근무하고 옮기는 순환보직 제도를 없애 전문성을 키웠다. 소수 임원이 독점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했다. 그 결과 포드의 전 직원이 회사가 처한 위기 상황을 절감했다. 사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룹 내 고급 브랜드인 재규어ㆍ랜드로버ㆍ애스턴 마틴ㆍ마쓰다를 차례로 매각했다.

다음은 친환경차로의 방향 전환이다. 승용차 부문에선 기름 먹는 하마로 불린 4.0L 이상 대형 배기량 엔진을 모두 없앴다. 대신 출력을 높이는 터보 엔진 개발에 주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대형 SUV 익스플로러에 4.2L 엔진 대신 240마력이 나오는 2.0L 터보 엔진을 달았다. 미 소비자들을 놀라게 하면서 대박을 쳤다. 더 이상 포드에 대형 엔진은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포드는 2015년까지 모든 승용차에 3.0L 이하 터보 엔진을 단다. 여기에 하이브리드ㆍ전기차로도 재빨리 방향을 전환했다. 보수적 기업문화로 유명했던 포드가 조직문화부터 경영체질을 확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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