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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텍스트로 ‘읽는 맛’ 내는 장인

중앙선데이 2012.06.02 22:31 273호 27면 지면보기
‘작은 게 맵다’란 속담만큼 스위스에 어울리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극도의 세밀함과 정교함을 요구하는 시계 공업, 학생 개인의 적성을 존중하는 맞춤교육 과정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또한 다다이즘의 한 조류인 ‘취리히 다다’가 촉발된 곳이자 기호학의 창시자인 소쉬르가 태어나 활동한 곳이다. 과학·문화·예술 분야에서 스위스인들의 행보는 화려하진 않지만 진지하고 치밀하고 사색적이다.

시대를 비추는 북디자인 ③ 스위스 타이포그라퍼 요스트 호훌리

이 중 상대적으로 그 영향력에 비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가 있는데 바로 스위스 디자인이다. 특히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스위스가 20세기 중반부터 선보인 ‘스위스 타이포그라피’는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에 정점을 찍었다. 그로부터 파생된 디자인은 여전히 젊은 디자이너들의 선망과 모방의 대상이고, 스위스 타이포그라피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유니버스나 헬베티카 서체는 많은 디자이너의 ‘애장품’이다.

내가 만나러 간 북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라퍼인 요스트 호훌리(79·사진)는 스위스 상갈렌에서 태어났다. 그는 상갈렌 토박이다. 1933년에 태어난 이후 줄곧 그곳에서 공부하고 활동해 왔다.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스위스와 디자인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이례적이다. 상갈렌은 스위스에서도 변방에 속한다. 가장 보수적이고 변화가 느린 동네인 아펜첼 주를 둘러싸고 있다. 상갈렌은 이 보수적인 동네로 가기 위한 관문이다. 그런 그곳에서 호훌리는 59년부터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당시 나이 26세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 행위의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59년엔 이미 스위스 타이포그라피라고 불리는 현대적인 그래픽 디자인 양식이 본궤도에 올랐을 무렵이다. 스위스 출신의 디자이너 에밀 루더가 초석을 다진 이 양식은 비대칭에 입각한 조판 방식, 헬베티카 혹은 유니버스를 중심으로 한 서체 운영, 그리드에 입각한 기능적인 레이아웃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 양식은 50년대부터 스위스 바젤·취리히를 중심으로 전개돼 동시대 많은 디자이너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인근 유럽 국가뿐 아니라 대서양 넘어 미국까지.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이탈하고자 하던 서양인들에게 스위스 타이포그라피는 혼란스럽고 카오스적인 지난 과거를 잊을 수 있는 유토피아적 세계이자 안정된 시스템이었다. 안락했고 기능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의 표현과 감정이 배제된 지극히 차갑고 이성적인 디자인이기도 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호훌리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원했다면 그는 스위스 타이포그라피의 ‘성지’인 바젤이나 취리히로 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향했다. 이러한 중심으로부터의 거리 두기는 그에게 객관적 통찰을 가능케 했다.

“50년대 후반 처음으로 북디자인 작업을 의뢰받았어요. 과학책이었죠. 문제는 그 당시 문법과도 같았던 스위스 타이포그라피 양식으론 이 책을 디자인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선배 디자이너인 호슈테틀러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에밀 루더처럼 넌 할 수 없어.’ 그 말 한마디가 제 작업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호훌리의 회상이다.

그 어떤 조형적 양식도 유행과 주류라는 이름으로 개별 디자이너에게 암묵적 강요를 할 순 없다. 그 양식 또한 다양한 양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디자인은 내용에서 출발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내용에 맞는 양식을 찾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의 행위다.

호훌리는 기존 스위스 타이포그라피가 지닌 독선적 성격을 멀리했다. “독선을 버려라”라고 말하는 그는 내용에 상관없이 일관된 타이포그라피 문법을 적용해야 하는 스위스 타이포그라피의 ‘교조주의’를 깨뜨렸다. 이런 자세에는 상갈렌 인쇄소에서 만난 호슈테틀러의 영향이 작용했다. 호슈테틀러는 상황과 내용에 따라 스위스 타이포그라피가 신성시했던 비대칭 레이아웃에서 벗어나 대칭적 레이아웃을 구사하는가 하면, 서체 사용에서도 보다 더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냈다. 그것은 스위스 타이포그라피로부터 한 발자국 비켜 선, 보다 더 유연한 디자인이었다. 호훌리는 이를 자신의 양식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혹자는 그래서 그의 디자인을 보고 있노라면 ‘읽는 맛’이 난다고 한다. “호훌리가 만든 책은 읽기에 매우 편합니다. 텍스트도 그래요. 그림과 텍스트를 조합시켜 나가는 방식은 독서 행위를 즐기게끔 만듭니다.” 스위스 디자이너 롤란드 프뤼의 설명이다.

이러한 질문과 실천행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호훌리는 상갈렌이라는 토양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스위스 북디자이너들에게 주목하게 됐다. 조형적 양식에 대한 질문이 내용의 발견으로 이어진 것이다. 초기에는 상갈렌과 관련된 서적 디자인으로, 훗날에는 79년에 공동 설립한 VGS라는 출판사와 2000년에 만들어진 에디치온 오스트슈바이츠의 출판사를 통해서다. 동시에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스위스 타이포그라피라는 거대한 물결 아래 숨어 있던 지층들을 세심하게 재편집해 나가는 대안적 행동이었다.
“호슈테틀러와 요스트 호훌리로 인해 세계 타이포그라피 지도에 상갈렌이 등장했다.” 영국의 타이포그라퍼이자 출판업자인 로빈 킨로스의 이 한마디는 상갈렌 디자인이 더 이상 가상이 아닌 실체임을 말해 준다. 50~60년대 시대정신의 결정판인 스위스 타이포그라피. 그 지배적 시대정신에 문제제기를 한 호훌리의 개인정신. 그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기에 오늘의 디자인계는 또 하나의 목소리를 더 듣게 되었다. 그 이름은 막 태동하는 상갈렌 디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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