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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몇 마디 나누고 카메라 뒤에 숨어 기다린다.피사체가 몰입할 때를

중앙선데이 2012.06.02 20:50 273호 19면 지면보기
-셀레브리티만큼 유명해 졌다.
“유명세를 타고 싶진 않다. 사진작가가 대중을 직접 만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사진으로 나를 보여주고 사진에 대한 반응을 들으면 된다. 방송 출연도 (이)효리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사진으로는 얼마든지 응원하겠다고. 방송은 구색 맞추기에 이용되는 듯한 느낌이 있다.”(*그는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의 프로그램 ‘이효리의 소셜클럽 골든12’에 출연 중이다. 이효리와 그의 친구들이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놀아 보자’며 진행하는 소셜 프로젝트 프로그램이다.)

Who Are You : 스타 찍는 스타 포토그래퍼 홍장현


-어쨌거나 스타와의 작업으로 유명해진 거 아닌가.
“내 경력의 큰 전기를 만들어준 건 사실이다. 2006년 패션지 화보 촬영 때 이효리와 작업하면서 의뢰가 3배 이상 늘었으니까. 그냥 연예인 화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스타를 잘 찍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배우나 가수는 이미 대중에게 각인된 고유한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살리면서 패셔너블하게 만드는 게 만만치 않다. 패션모델을 잘 찍기는 오히려 쉽다.”

1 모델 송경아. 바자 코리아(2008) 2 빅뱅의 지드래곤. 싱글즈(2011) 3 가수 이효리. 코스모폴리탄 코리아(2010)4 배우 김혜자. 바자 코리아(2009)5 빅뱅의 탑. 엘르 코리아(2009)
-작업은 어떤 식으로 하나.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뽑아낸 감정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이나 매체에서 만들어 낸 이미지처럼 사진가들이 요란하게 작업하는 건 아니다. 나는 몇 마디 나누고는 카메라 뒤에 숨는다. 때를 기다리는 거다. 꼭 필요할 때만 조명 안으로 직접 들어가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의견을 나눈다. 피사체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사진가는 인성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패션 사진은 상업과 예술 사이의 경계에 있다. 혹 예술적 평가라든지, 아쉬움은 없나.
“난 내 사진이 실린 잡지를 통해 반응을 받는다. 그건 배우들이 연기할 때 느끼는 것 이상의 짜릿함이다.”

박지성도 에인트호번을 거쳐 맨유 갔듯이...
몸값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그가 최근엔 또 한 가지 성과를 이뤘다. 한국 ‘토종’ 포토그래퍼 최초로 파리의 사진 에이전시인 윕 에이전시(Wib Agency)와 계약한 것이다. 패션 모델들이 국제적인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해 뉴욕·파리·런던·밀라노를 무대로 활약하는 것처럼, 그도 패션의 중심에 자신의 사진을 직접 알릴 수 있게 됐다. 윕 에이전시 홈페이지엔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한스 페러(Hans Feurer)의 이름이 그의 이름과 나란히 놓여 있다. 1960년대부터 영국·프랑스 보그 등을 중심으로 활약한 일흔 둘의 백전노장이다.

-세계적인 작가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파리에서 20년 넘은 에이전시다. 뉴욕·런던·밀라노에도 지사가 있다. 평소에 사진 시안을 찾기 위해 들여다보던 곳이다. 거기 내 이름이 올랐으니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어떻게 계약이 이뤄졌나.
“올해 초 국내 패션지 촬영을 뉴욕의 현지 스태프와 진행하면서 연이 닿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러고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게 다인가.
“4년 전쯤 대학생들 앞에서 특강할 때 ‘파리에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의 준비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길을 찾기는 쉽지가 않았다. 맨땅에 헤딩하고 싶지도 않았고.”

-보통은 맨땅에 헤딩해서 성취했다고들 하는데.
“외국에서도 연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다. 누구의 제자다, 인맥이 어떻다…. 오히려 한국에서 헝그리 정신이 더 통하는 것 같다. 물론 한국에도 해외 유학파가 갑자기 나타나지만 예전보다 그런 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해외 무대에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취약점들이 있다.”

-어떤 건가.
“모델이 약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한국 모델을 찍었는데 해외에선 한국 모델을 잘 모른다. 사진은 누가 찍느냐만큼 누구를 찍느냐가 중요하다. 톱 모델이 오케이한 작가라는 게 중요한 기준이 된다. 운 좋게도 최근 세계 모델 랭킹 1위인 라라 스톤을 촬영했다. 전 세계에서 통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는 뜻이고, 라라 스톤보다 아래의 모델은 다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1~2년은 좋은 모델을 촬영해 포트폴리오를 업그레이드할 생각이다.”
그는 파리 진출을 더 큰 무대로 가는 교두보라고 했다. “업계에서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많다. 구단이 유니폼 파는 부수효과를 노리고 아시아 선수들을 데려가는 것처럼 에이전시가 나를 데려간 것도 전략적 판단일 수 있다”면서 말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는 상관없다고 했다. “오히려 이용당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예를 들었다.
“박지성 선수를 생각하면 된다. 처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지 않았다. 네델란드 에인트호번에서 뛰다가 빅리그로 옮기지 않았나. 이 기회를 이용해 나도 5년 안에 더 큰 무대로 옮기면 된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장인어른, 김중만
그는 고등학교 시절 “멋있어 보여서” 사진을 시작했다. 운동을 했지만 그저 그런 선수가 될 것 같아 대안으로 선택한 게 사진이었다.
“원래는 체육을 전공하려고 테니스를 했는데, 고3이 되니까 아버지께서 국가대표 못 될 거면 관두라고 하시더라. 그러곤 멋있을 것 같다고 사진 책을 가져다 주셨다. 아버지가 악기도, 그림도 좋아하셨던 좀 ‘노시는’ 분이다(웃음). 그때 한눈에 꽃혀버렸다. 화려하고 멋지니까 일종의 ‘겉멋’이 들어 시작했던 거다.”

-출발은 싱겁다.
“대학을 마치고 유학도 생각했지만 스튜디오에 어시스턴트로 들어갔다. 아침 8시에 나가서 새벽 3시까지 일하면서 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았다. 그래도 확신이 있어 밀고 나갔는데, 작가로 독립하고 나서 힘들었다. 2년 동안 내가 지금 도박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찍은 사진을 세상이 알아줄까 고민했다. 그렇게 찍고 또 찍으면서 결혼도 했고,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이런 과정은 다른 패션 포토그래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에겐 좀 더 특별한 점이 있는데, 그가 사진계의 ‘로열 패밀리’로 불린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말하는 그가 ‘로열’ 소리를 듣는 건 장인 덕분이다. 그의 장인은 사진작가 김중만이다. 최근 김중만 작가의 아들이 한국에 들어와 사진 공부를 시작하면서 ‘패밀리’의 수도 불었다. 그는 대화 중에 장인어른이란 호칭 대신 ‘선생님’이란 말을 썼다. “에이전시 계약은 아직 선생님께 말씀 못 드렸다”는 식이다.

-평소에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나.
“장인어른이기 전에 내겐 사진 스승이다. 얼마 전 책을 기획하신다며 사진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40장을 보여드렸는데 한 장 빼고 좋다고 하신 게 거의 처음 들은 칭찬이다. 평소 칭찬을 거의 안 하시지만 늘 사진에 대해 고민하시고, 내게도 ‘나중에 너의 작업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김중만 작가가 말하는 ‘나중에 너의 작업’은 어떤 건가.
“선생님은 나와는 사진의 출발점이 다른 분이다. 패션 사진 작업도 하셨지만 그건 선생님 작품 세계의 일부다. 그래서 내게도 패션 외의 작업을 고민해 보라는 말씀인데, 난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한 셈이다. 끝까지 패션으로 갈 생각이니까.”

-패션계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곳이다.
“마흔 살만 넘어도 젊은이들에게 밀려 일이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작가들이 사진의 근원을 찾겠다면서 다른 분야로 옮겨간다. 외국에선 일흔 넘은 작가들이 명품 화보를 찍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도 일흔 살이 돼도 패션 사진을 찍을 거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피사체를 보는 눈도 좋아진다. 그 눈으로 평생 패션 사진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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