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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국회의장' 강창희, JP에 대들었다가…

중앙일보 2012.06.02 00:52 종합 4면 지면보기
1일 국회의장 및 부의장 선출을 위해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왼쪽)이 의장 후보로 선출된 강창희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은 1일 의원총회를 열어 강창희(대전 중·6선) 의원을 19대 국회 전반기(2년)를 이끌 국회의장 후보로 뽑았다. 강 의원은 투표에서 총 136표 가운데 88표를 얻어 48표를 얻은 정의화(5선·부산 중-동) 의원을 눌렀다.

첫 충청권 국회의장…JP에도 대든 ‘스트레이트적 인간’
19대 전반 입법부 수장 후보 강창희



 강 의원이 5일 개원 본회의에서 국회의장으로 공식 선출되면 헌정 사상 첫 충청권 출신 국회의장이 된다. 새누리당(150석)과 선진통일당(5석)을 합치면 과반이라 무난히 국회의장으로 선출될 것이란 전망이다.



 19대 국회의원 가운데 강 의원처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도 많지 않다는 평가다. 그는 육사 25기로 현역 의원 중 유일한 민정당 출신이다. 육사 시절 축구부 주장을 맡았던 그를 축구를 좋아했던 육사 선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꼈다고 한다. 항간엔 ‘전두환 부관설’이나 ‘12·12사태 가담설’이 돌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그는 1981년 중령으로 예편한 뒤 민정당 조직국장을 맡아 정계에 진출했다. 83년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 예비후보 승계를 통해 37세에 첫 금배지를 달았다. 85년 총선에서 대전 중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지만 88년 총선에선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신민주공화당 돌풍에 밀려 낙선했다. 그 뒤 3당 합당으로 지역구를 내놓게 되자 92년 총선에선 민자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3선 고지를 밟았다. 95년엔 자민련에 입당해 JP 문하로 들어갔다. 98년 DJP 공동정부가 출범하면서 초대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입각했고, 자민련 사무총장·원내총무 등의 핵심 당직을 두루 거치며 ‘포스트 JP’로 떠올랐다. 하지만 JP가 99년 7월 내각제 개헌을 연기하기로 마음먹자 김용환 당시 수석부총재와 함께 JP노선에 정면으로 반발하면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무렵 JP는 대드는 강 의원을 가리켜 “스트레이트적(직선적) 인간”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특히 2000년 말 새천년민주당이 자민련의 교섭단체 등록을 돕기 위해 의원 3명을 자민련으로 보내는 ‘의원 임대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는 “정도가 아니다”라며 끝까지 교섭단체 등록 서명을 거부했다. 교섭단체는 20명이 넘어야 하고, 등록을 하려면 20명의 서명이 필요한데, 그가 거부하는 바람에 자민련은 등록을 하지 못했다. 화가 난 JP는 그를 당에서 제명시킨 뒤 추가로 의원 한 명을 민주당에서 더 꿔와야 했다. 자민련에서 쫓겨난 강 의원은 한나라당으로 건너갔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의 인연은 한나라당 시절인 2004년 맺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 박근혜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망설이자 강 의원은 “이렇게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버님 같으면 어떻게 판단하셨겠느냐. 나라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출마를 권유했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선 낙선했지만 2006년 전당대회에서 박 전 위원장의 지원을 얻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성격이 괄괄한 편이라 2008년 총선 때는 박근혜계 몫으로 공천심사위에 참여해 당시 이명박계 실세였던 이방호 사무총장과 멱살잡이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됐던 박 전 위원장의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17대 총선에 이어 18대 총선에서 또 낙선해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으나 이번에 충청권에 불어닥친 새누리당 돌풍에 힘입어 8년 만에 국회로 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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