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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사망으로 왕실 권위 추락 … 그녀 두 아들이 인기 되찾아

중앙일보 2012.06.02 00:22 종합 22면 지면보기
윌리엄 왕자(맨 위)와 해리 왕자가 어머니인 다이애나비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던 모습. [중앙포토]
1926년 4월 21일 영국 런던 중심부의 저택에서 한 여아가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아무도 이 아이가 장차 왕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했다. 국왕 조지 5세의 장손녀라는 신분 때문에 곧바로 공주가 됐지만 아버지 앨버트 왕자는 둘째 아들이었다. 설사 아버지가 왕위에 오른다 해도 남동생이 태어나면 그가 왕세자가 되는 것이 전통이었다.


영화와 시련의 60년

 그가 열 살 때인 1936년에 아버지가 왕(조지 6세)이 됐다. 큰아버지인 국왕 에드워드 8세가 재임 기간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이다. 에드워드 8세는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 월리스 심슨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버렸다.



 1952년 2월 6일 엘리자베스 공주는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하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케냐에서 부친의 서거 소식을 듣고 곧바로 귀국했다. 당시 나이 스물 다섯. 엘리자베스 2세의 시대는 그렇게 갑작스레 막이 올랐다. 이후 60년, 여왕은 영화와 시련이 교차하는 세월을 보냈다.



 여왕이 즉위했을 때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시작된 식량 배급이 실시되고 있었다. 승전국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경제는 후퇴했고 국제사회의 주도권은 이미 ‘형제의 나라’ 미국에 넘어간 상태였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 제국’은 오래된 과거의 얘기였다.



 여왕은 즉위 다음 해에 반년 동안 호주·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를 순방했다. 영국의 영향력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영국은 1956년 수에즈 운하의 관할권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와 공동으로 이집트를 공격했다가 국제사회의 비난에 못 이겨 빈손으로 후퇴했다. 영국의 쇠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60·70년대는 아프리카 대륙과 카리브해의 식민지 국가들이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75년엔 호주에서 영국이 파견한 총독이 호주 총리를 경질하는 사태가 일어나 반영 감정이 극도에 달하기도 했다. 이 기간 20여 개의 영국 식민지가 독립했다.



 70년대 중반 파운드화 평가 절하와 외환 부족으로 영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형편이 어려워진 국민들은 호의호식하는 왕실과 왕족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정치적 자유주의(liberalism)의 확산은 군주제를 위협했다. 미디어의 발달로 일반인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왕족과 귀족들의 생활이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됐고, 왕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은 왕실의 위엄과 인기를 어느 정도 되찾는 계기가 됐다. 백작 가문 출신이지만 비교적 소탈한 성품을 보인 다이애나비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이애나비는 두 아들을 귀족학교가 아닌 일반 사립학교에 보냈고, 분쟁 지역의 지뢰 제거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왕실의 갖가지 추한 모습은 92년에 극적으로 펼쳐졌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불화가 세상에 드러났고, 그의 여동생 앤 공주가 이혼을 했다. 앤드루 왕자와 부인 새러 퍼거슨은 별거를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11월에는 윈저성에 큰불이 났다. 여왕은 연말의 한 연설에서 “끔찍한 해”라고 표현했다.



 여왕의 수난은 계속됐다. 온갖 추문 끝에 찰스 왕세자 부부는 96년에 이혼했고, 다음 해 다이애나비가 파리에서 비운의 사고로 36세로 생을 마감했다.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별장에 머물며 침묵했다. 세간의 비난은 찰스 왕세자와 여왕에게 쏟아졌다. “왕실을 없애자”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의 회고록 『여정』에 따르면 여왕은 “이대로 가면 왕실에 대한 반감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그의 권고에 따라 마지못해 애도 성명을 냈다. 다이애나비의 요절은 왕실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후 왕실의 인기는 다이애나가 남긴 두 아들, 윌리엄·해리 왕자에 의해 차츰 회복됐다. 두 왕자는 위험 지역에서의 인명 구조 활동과 전쟁터에서의 군 복무로 왕실의 도덕적 권위를 세웠다. 윌리엄 왕자는 지난해 평민 출신의 케이트 미들턴과 결혼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윌리엄 왕자 부부는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정상적’ 왕실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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