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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유발" 악평받은 고전소설 내용보니…

중앙일보 2012.06.02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뜨거운 계절이 돌아왔다. 찬양하든, 금기하든 인간사에 성(性)만큼 뜨거운 게 있을까. 에로티즘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O 이야기』 국내 출간을 계기로 우리의 겉과 속을 들여다봤다. 올 3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짜릿한(racy) 소설 톱10’을 소개한다.


예[책과 지식] 60년 전엔 “구토유발” 악평, 지금은 에로티즘의 고전
술인가? 외설인가? … 타임이 뽑은 짜릿한 소설 베스트 10



O 이야기

폴린 레아주 지음

성귀수 옮김, 문학세계사

294쪽, 1만2000원




실체 없이 제목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설, 축약본이나 해적판의 형태로 몰래 읽히던 에로티즘의 고전 『O이야기』가 실력 있는 번역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이 소설이 출간되던 1954년 당시, 예술작품이 표현할 수 있는 에로티즘의 수위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교양주의자이며 평생 인간의 구원을 화두로 삼았던 프랑수아 모리아크가 이 작품에 대해 했다는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란 악평은, 출간 이후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고전에게 으레 따라붙는 구설 정도로 비쳐진다.



 하지만 에로티즘 문학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이 소설만 해도 작가의 본명이 알려지기까지 물경 40년이 걸렸는데, 그 시간은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현대인의 의식이 보편적 가치규범의 자장 속에 편입되는 데 걸린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출간 당시 공개된 작가 이름은 폴린 레아주이지만 이것은 안느 데클로스가 이 소설을 위해 지은 필명이다.



 작가의 연인이었던 당대 프랑스문단의 명망가 장 폴랑이 “여자들은 결코 사드 백작 같은 성애소설을 쓸 수 없다”고 말한 것에 자극을 받아, 그를 위해 보란 듯이 쓰게 되었다는 안느 데클로스의 먼 훗날의 고백은 예술과 욕망, 권력의 은유로서의 성을 둘러싼 양성간의 갈등 같은 문제에 대한 현대사회의 복잡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장 폴랑은, 연인이 자신을 위해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끝내 모르고 1968년에 죽었다.)



 소설의 서사는 매우 단순하다. ‘O’로 지칭되는 여인이 르네라는 애인의 유도와 권고에 따라 벌이는 엽색행각이 주를 이룬다. O는 사교클럽 소속의 남자 네 명과 함께 파리 교외의 한적한 성에 머무르며 피학적인 그룹섹스를 즐기기도 하고, 애인의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애인 등과 거푸 지독한 성애를 즐긴다. 하지만, 작가는 성적인 행위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그것이 이뤄지기까지의 심리적 정황을 매우 섬세한 지문으로 구축하는 데 정성을 기울인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단순히 풍속을 다룬 패설이 아닌 예술소설의 원리에 충실하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 O의 의식 속에 개입해 다음 같이 진술한다. “몸을 함부로 내돌림으로써 존엄해진다는 것은 분명 놀랄 현상이나, 거기 존엄한 무언가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 얼굴에선 알 수 없는 고요함과 더불어 은자들의 눈빛에서나 떠오를 법한 내면의 미소가 은은하게 번지는 것이었다.”



 원작의, 절제와 극렬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문장의 온도 차이를 시인이기도 한 번역자가 섬세하게 한국어의 질감으로 복원한 것도 독자 입장에서 퍽 고마운 일이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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