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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언니들 위한 '클럽 터널' 훈남 쭉 서서

중앙일보 2012.06.02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최근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단축 마라톤 대회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5월 26일 서울 상암동 올림픽공원에서 나이키 우먼스 레이스 7㎞를 완주한 본지 4명의 여기자(왼쪽부터 김혜미·이지상·채윤경·민경원)가 환희에 찬 모습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박종근 기자]


지난 4월 중순 어느 아침. 출근해보니 ‘나이키 우먼스 레이스 서울 7K’가 실시간 검색어로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었다. 20대 여성만 뛸 수 있는 마라톤이라니! 게다가 애프터파티까지 있단다. 서른이 되기 전 ‘내 생애 첫번째 레이스’라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생각에 2년차 여기자 4명의 마음이 동했다. 우리는 달리기로 결심했다.

[여기자 4명의 7㎞ 마라톤 체험기] 5㎞ 뛰자 거대한 ‘클럽터널’ … 미친듯 춤추니 거짓말처럼 힘 솟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여대생 시절엔 우리도 요가를 하고 수영을 즐기는, 나름 꽃다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입사한 이후엔 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은 먹었어도 야근이 이어졌고 회식날이 꼬박꼬박 돌아왔다. 금요일 밤에 자고 일어나면 일요일 아침이 됐고 날아간 휴일을 원망하며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솟구치는 짜증과 적체돼 가는 스트레스에 자신을 스스로 ‘분노조절 장애’라 칭했다.



 5월이 되자 이지상(28) 기자가 가장 먼저 헬스장을 찾았다. 석 달 등록해 놓고 세 번을 채 못 간 그곳에 두고온 운동화를 찾으러 간 것. “짐은 이미 지난해에 다 버렸다”는 말과 함께 문전박대만 받았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아파트 조깅 트랙을 돌아보니 만만치 않았다. 이지상 기자가 ‘이러다 우리 다 죽겠다. 연습하자’며 동기들을 설득했다.



 다행히 약발은 먹혔다. 레이스 전 진행된 6주 과정 트레이닝 세션에 전부 참석하자는 당초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12일 세션에 참여해 모의고사까지 치렀다. 한강공원에 모여 5~7㎞ 거리를 그대로 달려보는 코스였다. 그날 반밖에 뛰지 못한 나(민경원·28)는 그 전날 공들여 한 세팅 펌 핑계를 댔지만 실은 충격에 빠졌다. 7㎞는커녕 5㎞도 내겐 너무 먼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날로 스마트폰에 ‘나이키+GPS’ 앱을 깔고 특훈에 들어갔다. 1㎞ 달릴 때마다 몇 분 만에 달렸는지 알려주고, 지치고 힘들 때는 미리 지정해 놓은 ‘파워송’을 들려주는 앱이다. 특히 3㎞에서 1㎞씩 늘려가며 ‘미션 완수(completed)’ 메시지를 듣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비록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지만 말이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지난달 26일 오후 4시쯤 서울 상암동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을 찾은 우리는 스무 살로 돌아간 것마냥 팔과 목에 타투를 붙이고 참가자 이름이 빼곡하게 쓰인 벽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시세이도·올림푸스·파워에이드·비타민워터 등 각종 브랜드에서 마련한 행사를 즐기고 러닝화·러닝룩 컨설팅도 받았다.



 오후 6시30분. 10, 9, 8… 카운트다운과 함께 7000개의 젊음이 폭발했다(사진). 공원 코스와 강변 코스로 나눠진 두 그룹은 응원단장을 맡은 노홍철과 하하의 격한 파이팅을 받으며 스타트 라인을 밟았다. 20대 여자들이라서 그런걸까. 스타트 라인에서도 끈을 고쳐 묶는 이들보단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가다듬는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우리가 속한 그룹은 공원 코스. 비록 몸은 곧 서른일지언정 마음만은 스무 살인 우리도 머리를 높게 묶고 그 행렬에 보폭을 맞춰 전진했다.



 500m도 채 지나지 않아 치어링 밴드가 등장했다. Someone, 제8극장, YTST 등은 신나게 풍악을 울려 댔고 드럼 소리에 맞춰 가슴도 콩닥콩닥 뛰었다. 1㎞ 돌파에 걸린 시간은 6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2㎞ 지점까지만 해도 가뿐했다. 검은색 티셔츠 뒤에 직접 새겨 넣은 ‘내가 오늘 1등’ ‘걱정 대신 열정으로’ 등의 문구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완주하면 결혼하자’ ‘끝나고 치맥?’ 등의 문구는 슬며시 미소 짓게 하기 충분했다. 사이사이 ‘그래 나 서른이다. 어쩔래’ 하는 언니들의 유쾌한 도발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적은 가까이에 있었다. 2.5㎞ 지점에 위치한 식수대에서 생명수인 줄 알고 마셨건만 이게 복통유발수였다. 입사 후 평균 5㎏ 이상 체중이 증가한 우리의 몸을 과신한 게 실수였다. 채윤경(27) 기자는 “평소에도 타사에 물 먹지 말라고 잔소릴 듣는 2년차 기자들이 물을 두 컵이나 벌컥벌컥 마신 게 문제”라며 통탄해했다. 눈빛을 주고받으며 버텨온 채 기자와 나는 오른쪽 배와 가슴 사이가 찢어지는 고통에 눈물을 머금고 걷기 모드로 돌아섰다.



 3㎞부터 마의 오르막길이 시작되자 그마저도 공중분해됐다. 모래밭에선 흙먼지가 풀풀 날렸고 언니들 특유의 허리손 포즈에 걸려 충돌 사고도 속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유자적하게 카카오톡을 날리거나 인증샷을 찍는 이도 많았다. 맞다. 우리 모두 즐기러 온 거다. 알 배긴 내 다리에 고통을 강요하지 말지어다….



 내 맘을 정확히 읽었는지 5㎞부터 내리막길이 등장했다. 지친 참가자들을 독려하기 위한 거대한 클럽 터널도 등장했다. 빵빵하게 터지는 음악과 번쩍번쩍한 조명 아래 미친 듯 춤을 추고는 다시 충전 완료! 거짓말처럼 6㎞를 지나고 속도에 다시 탄력이 붙었다. 훈남 부대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지친 여성들을 격려했고 저 멀리 나비넥타이를 매고 레드 카펫을 깔아놓고 기다리는 꽃미남 부대가 보였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우리 중 처음으로 피니시 라인을 밟은 것은 역시나 평소에 등산으로 몸이 다져진 김혜미(29) 기자였다. “혼자 뛰다 보니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게 되더라”고 고백한 김 기자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같이 20대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늘 내 뜻대로 풀려간 세상은 아니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디뎌온 덕에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44분 33초, 48분 53초, 51분 28초, 52분 03초. 네 명의 기록은 제각각이었지만 우리의 첫 번째 레이스를 당당히 마쳤다. 완주한 5900명의 평균 기록이 50분이라니 그리 처지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여자친구의 완주 모습을 찍어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남친 부대 속에서 당당히, 아니 조금은 부러워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팔목에 새겨진 선명한 완주 도장, 뿌듯했다. 1시간30분 이내 완주자에게만 제공되는 제이에스티나 목걸이도 받았다.



 애프터 파티 분위기는 후끈했다. 노홍철과 하하에 이어 김태우, 싸이, DJ DOC의 이하늘로 이어진 무대 앞에서 참가자들은 하나가 되어 환호하며 몸을 흔들었다. 더 크게 소리 지르고 더 높이 뛸수록 스트레스가 저 멀리 날아갈 것처럼 말이다. 죽을 것 같이 힘들던 기억도 비처럼 내리던 땀방울도 모두 사라지고 다시 에너지가 솟았다. 또 하나의 장벽을 넘어섰다는 성취감에 여유가 함께 생겨났다. 이곳을 찾은 모든 이에게도 바로 이런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레이스를 마무리 지은 네 여기자의 마음은 똑같았다. 오늘 소맥을 마시더라도 내일은 달리리. 아직 젊으니까!



민경원·이지상·김혜미·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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