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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비정성시의 영웅 만들기

중앙일보 2012.06.02 00:00 종합 42면 지면보기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요즘 중국의 관영 중앙방송(CC-TV) 뉴스 채널을 켜면 하루에 두 차례 이상 접하는 뉴스가 있다. 버스에 치일 뻔한 학생들을 밀쳐내고 자신은 버스에 깔린 20대 여교사의 병상 중계 뉴스다. 이 여교사는 두 다리를 절단했다. 지난달 8일 일이다. 병원에 실려간 여교사는 며칠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찾았다. CC-TV는 이날부터 3주째 여교사의 병상을 중계하고 있다. 인민일보·신화통신 등 관영매체도 여교사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칭송하는 보도를 다각도로 쏟아냈다. 검색사이트에 여교사의 이름을 쳤더니 1만3945건의 뉴스가 걸렸다. 방송 보도는 1만2063건에 달한다. 뉴스의 융단폭격이다.



 중국 매체의 보도 내용·형식을 관할하는 지휘자는 공산당 중앙선전부다. 선전부는 올해 ‘도덕 회복’ 캠페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말 광둥성 포산(佛山)시에서 발생한 2세 여아 뺑소니 사건의 전 사회적 충격의 여파다. 차량 두 대가 7분 간격으로 이 아이를 깔고 지나간 것도 충격이었지만 길바닥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이 여아를 본체만체하고 지나간 18명의 비인간성이 고스란히 폐쇄회로 TV에 담긴 것이다. 고도성장 병을 앓고 있는 요즘 중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비정성시(悲情城市·비정한 도시)’였다.



 선전부는 비장하게 도덕 부흥의 출발점에 섰지만 해법이라고 내놓은 것은 구태의연한 레이펑(雷鋒)이었다. 자기 희생의 아이콘인 레이펑은 사회주의 모범 인간형으로 추앙돼온 1960년대 병사다. 대약진운동 실패 이후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의문과 피로감이 퍼지던 시대였다. 사회주의 정신 무장이 절실하던 시대적 요청이 낳은 모델이었다. 창의성 없는 프로파간다(대중 선전전략)로 기대 효과가 하락하는 시점에 죽음을 불사한 여교사가 등장한 것이다. JTBC 뉴스에 담기 위해 베이징 주민들의 반응을 듣다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을 구했으니 망정이지 실패했다면 여교사의 희생은 부질없는 것 아닌가.”



 “훌륭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권할 만한 행동은 아니다.”



 “자신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함부로 뛰어들어선 안 된다.”



 중국 당국은 현실 영웅을 통해 도덕적 각성을 이끌고자 하지만 인민들 사이에선 냉소가 흐른다. 희생은 고귀하지만 결국 자기만 손해라는 인식이다. 이런 풍조의 밑바닥엔 부의 절대량을 독점한 소수의 특권층에 대한 반감과 믿을 건 자신뿐이라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같은 뿌리의 유교 공통체적 전통 때문에 우리는 중국에 대해 막연한 교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시대와 문화대혁명, 그리고 개혁·개방 등 극과 극의 체험에 내몰리며 도덕 붕괴와 극심한 가치관 혼란을 겪고 있다. 이해의 접점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중국이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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