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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나는 왜 이 길을 걸었나?

중앙일보 2012.06.02 00:00 종합 42면 지면보기
정진홍
논설위원
# 800여㎞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모두 걸었다. 정확히 43일 걸렸다. 남들보다 조금은 느리지만 정직하게 한발 한발 내딛은 결과다. 그러고 보면 발이 참 무섭다. 생장피에드포르를 출발해 피레네산맥을 넘고 바스크와 나바라, 그리고 라 리오하 지방을 거쳐 황량한 메세타 지역을 가로질러 다시 칸타브리아 산맥을 휘감아 오르내려 갈리시아의 주도이자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 불리는 그 길은 분명 고통의 연속이었다. 단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며칠씩 계속된 비와 눈보라, 심지어 우박과 세찬 바람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불꽃 같은 스페인의 태양마저 겹쳐지며 정말이지 더는 못 걷겠다는 탄식이 나올 즈음에야 그 날의 걷기는 끝이 나곤 했다. 그 덕분에 발엔 물집이 잡혀 터지고 응어리져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고 막바지에는 발을 땅에 디디기조차 고통스러울 정도가 됐다. 뿐만 아니라 어린애를 등에 짊어진 듯 무거운 배낭을 시종일관 지고 다니다 보니 허리를 곧추세우기도 쉽지 않았다.



 # 하지만 이 길은 내게 그 고통 이상의 것을 선물해 줬다. 무엇보다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심지어 내 가장 깊은 곳까지 뒤집어놓았다. 씨앗을 뿌리려면 밭을 갈아엎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밭고랑을 몽땅 갈아엎은 것이 바로 이 길이었다. 그것도 바닥이 보일 만큼 깊이! 깊게 갈아엎어야 삶의 진짜 속살이 나온다. 덕분에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실컷 울었고 내 마음의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 한번은 밤을 세우며 걸은 적이 있다. 걷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다. 걷고, 먹고, 자다 다시 걷는 반복된 생활이 자칫 또 하나의 매너리즘을 만드는 거 같아 그걸 한번 흔들기로 작정한 거였다. 인생이란 때로 흔들어줘야 제 맛을 낸다. 가만히 놔두면 침전물이 생기는 생과일주스나 마찬가지다. 솔직히 이국에서 초행길을, 그것도 산길을 밤에 오르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지만 서둘지 않고 산티아고 가는 길을 뜻하는 노란색 화살표를 찾아 그것을 따라 걸었다. 밤이긴 했지만 내가 지나는 길이 광활한 밀밭을 가로질러 산으로 오르고 있음을 알았다. 드디어 새벽미명에 790m 높이의 페르돈고개에 닿았다. 순례자들의 철동상이 늘어서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페르돈고개에서 침낭으로 몸을 감싼 채 한 시간 이상 동트기를 기다렸다. 정말 추웠다. 온몸이 차디 찬 땅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더는 견디기 힘들 만큼 돼서야 비로소 동이 텄다. 더 이상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바로 그 아슴프레한 순간에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찍은 것은 언덕 위에 길게 늘어선 순례자들의 철동상이었지만 정작 진짜로 찍힌 것은 나 자신의 마음바닥이었다. 그 순간 나와 순례자들의 철동상도 하나가 됐다.



 # 40일 넘게 절대고독 속에 홀로 걸은 산티아고 가는 길은 누구와 경쟁하며 가는 길이 아니다. 여럿이 함께 가든 혼자 가든 자아를 찾아가는 고독한 길이다. 고독은 사람을 숙성시킨다. 마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며 즐겨 먹었던 하몽처럼! 그것은 아마도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만들기 힘든 거대한 고독의 시·공간이리라. 그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의 가장 밑바닥이 드러났다. 그런 가운데 가족의 소중함과 기본의 절실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했다. 진짜 소중한 것은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높고 높은 교회의 첨탑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낮고 낮은 바닥으로, 그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진짜 소중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 나는 다시 산티아고를 떠나 스페인의 땅끝마을 피니스테레를 향해간다. 말 뜻 그대로 거기는 종점이다. 삶에서 최고의 매력은 끝까지 하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따로 없다. 끝까지 하면 모두 이기는 거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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