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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럭비연합회…일요일마다 잠원 한강가서 희생정신·협동심 ‘터치 다운’

중앙일보 2012.05.31 04:40 2면
강남구럭비연합회 이기찬 회장(맨 앞)이 회원들과 함께 잠원한강공원 트랙구장에서 포즈를 취
했다. 이들 뒤로 럭비 골대가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럭비는 비인기 스포츠다. 축구·야구에 비해 즐기는 이도 적고 팬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운동이 가진 거친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있다. 주말이면 잠원한강공원에 모여 운동을 한다. 이들에게 럭비는 “단결력을 배울 수 있는 신사들의 스포츠”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와 신사중학교 사잇길로 들어가 굴다리를 지났다. 눈 앞으로 반짝이는 한강 물빛과 시원한 바람이 반겼다. 일요일인 지난달 29일 잠원한강공원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부모,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는 이들이 보였다. 이 풍경 속에 좌우에 럭비 골대가 박혀 있는 트랙구장이 있었다.



“길게~!” “공을 돌려야지!” “받아!” 유니폼을 입은 남자 30여 명이 럭비공을 뺏으려 바삐 움직였다. 이곳 저곳에서 코치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을 든 한 남자가 경기장 선을 따라 쏜살같이 뛰었다. 육중한 체구와 달리 움직임이 날렵했다. 그가 골대를 지나 터치다운을 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들이 즐기고 있는 운동은 ‘터치 럭비’다. 상대를 넘어트려 공을 뺏는 일반 럭비와 달리 공을 잡은 선수 몸을 손으로 건들기만 하면 된다. 이 터치 횟수가 5회 이상이면 공격권이 넘어간다.



강남구럭비연합회 회원들은 매주 일요일 오전 잠원한강공원에 모여 터치 럭비를 즐긴다. 이 모임을 만든 사람은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이기찬(41)씨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 럭비 선수였으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운동을 접었다. 그러다 2006년, 학창시절 같이 운동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은 대만에 가 친선경기를 했다. 큰 점수차로 졌지만 즐거웠다. 외국의 자유롭고 활발한 럭비 문화가 부러웠다. 다음해 ‘2007 홍콩 국제 7인제 럭비선수권 대회’를 관람하기로 했다. 그곳 동호회와의 경기 일정도 잡아뒀다. 이를 위해 선·후배들이 모여 연습하기로 했다. 장소가 문제였다. 지인에게서 여의도한강공원에 럭비구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운동장 여건은 좋지 않았다. 자갈밭에 골대만 덩그러니 꽂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냐’라는 생각에 열심히 연습했다.



이 회장은 홍콩을 다녀온 후 더 많은 사람과 럭비를 즐기고 싶었다. 후배에게서 인터넷 블로그·카페 만드는 법을 배웠다. 모임을 알리는 글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첫 모임에 카페글을 보고 3명이 찾아왔다. 이후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 이 회장은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한다. 비가 내리거나 선수가 한 명이 나오더라도 쉬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가 생겼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가 찾아와 한강공원특화사업으로 인해 럭비구장이 없어진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한강사업본부를 방문해 항의하고 대한럭비협회에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려 럭비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한강사업본부로부터 “새로운 부지를 함께 찾아보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때부터 한강변을 훑으며 럭비구장으로 쓸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한 끝에 마침내 잠원한강공원 트랙구장을 발견했다. 두 달여간 노력한 결과였다.



이곳은 강남구럭비연합회뿐 아니라 다른 구의 럭비동호회도 찾아온다. 성북구동호회 소속 박기석(35)씨는 “대학 때까지 럭비 선수로 활동했다. 그만두니 몸무게가 100㎏에 육박해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며 “럭비는 나를 희생해 다른 선수를 돕는 협동심이 매우 중요한 운동이다. 단결력이 필요한 직장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키 179㎝에 체중 81㎏이다.



호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서용(34)씨는 당시 추억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 “내가 넘어지면 동료들이 내 위로 진영을 만들어준다. 마치 전쟁에서 나를 구해주는 느낌”이라며 “에너지가 넘치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전기회사 엔지니어인 일본인 야스다 다쿠오(50)는 “럭비는 머리를 써야 하는 운동이다. 큰 소리를 내야 하고 긴장감도 있다”며 “남자의 본능을 깨우는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럭비를 배워본 적 없는 분들이 찾아와도 환영한다”며 “많은 사람이 인내·희생·협동을 필요로 하는 럭비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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