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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우리가 잊고 있는 해외 입양인

중앙일보 2012.05.31 00:00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기택
시인
4년여 전 작가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미국 버클리에 머물 때 해외 입양인 세미나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가정에서 자라는 해외 입양아들에 대한 연구 발표와 토론 자리였다. 입양아의 특성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담은 연구 발표에 이어 시인, 가수, 영화제작자 등 한국계와 중국계 입양인 예술가들의 작품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주제 발표를 보고 입양아 문제가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느낄 수 있었고, 입양인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청중의 웃음과 탄식에서 세미나의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백 명이 넘는 청중 대부분이 해외에서 입양한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라는 것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들의 진지한 눈빛과 오랫동안 참았다가 쏟아내는 듯한 많은 질문이었다.



 한국계 입양인 예술가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초청해 오클랜드의 한 한국식당에서 여는 공연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공연은 물론이고 한국인, 백인, 흑인, 히스패닉 등으로 이루어진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과 응원도 볼 만했다. 입양인이 겪은 굴욕과 고통을 블랙코미디로 만든 공연도, 부모의 반대로 미국 입양이 좌절된 아이 대신 그 아이 이름으로 입양된 기구한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일인칭 복수’도 퍽 인상적이었다. “당신이 한 밤, 이광수라는 한국 이름을 기억하는/ 그 시간에 부를 수 있는 하나의 노래, 광수는/ 밝게 빛나라는 뜻, 뭔가를 비출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뜻이지.”(리 헤릭, ‘구원’). 입양인의 아픔을 노래한 시인의 목소리도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가 50년 넘게 수많은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고 거의 잊어버리고 있는 동안 그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미국에서는 해외 입양인 문제가 새로운 문화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해외 입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만한 연령으로 성장하면서 입양인 문화는 미국의 일상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해외 입양인 문제는 과거의 일이고 남의 일이다. 전후 혼란기에 굶주리고 헐벗은 고아들을 위해 시작된 해외 입양이 60년간 20만 명에 이르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도 그렇다. 미국과 유럽으로 간 많은 입양아들이 성인이 되어 한국으로 날아와 한국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데도 그렇다.



 해외 입양인들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자신이 성장과정에서 겪은 인종차별주의, 상실감, 정신적 충격의 가혹한 경험을 말하지 않는 데 익숙하다고 한다. 어릴 때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말했다가 양부모가 공포에 질려 마음을 닫는 걸 보았다는 이도 있다. 그들은 백인사회에 동화되어 침묵 속에 살다가 중년 이후에 이르러서야 외로움과 소외감이 주는 고통을 깨닫고 치유하게 된다고 한다(『인종 간 입양의 사회학』). 인종이 다른 아이를 기꺼이 맡아 키우는 양부모의 깊은 사랑과 헌신 앞에서 입양인은 내면의 상처가 있어도 차마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은 잠재해 있고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계 입양인 작가 제인 정 트렌카의 자전적 소설 『피의 언어』는 이런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근 프랑스에서 장관이 된 한국계 입양인 플뢰르 펠르랭이 화제다. 피부색이 누런 입양인이 온갖 어려움과 편견을 이겨내고 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정말 반갑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가 한국계 입양인이란 것이 우리가 열광할 만한 일일까? 한국인의 우수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해외 입양아라는 주홍글씨와 상처는 우리가 준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고 오늘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은 그와 양부모의 노력이다. 그는 더 이상 한국인도 버려진 아이도 아니며 어느 프랑스인과도 다르지 않은 프랑스인이다.



 성공한 소수의 입양인에 대해 주목하기보다는 해외 입양의 그늘과 보이지 않는 그들의 상처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성인이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한국에 와서 헤매며 고민하는 입양인들에게도 정책적인 배려와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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