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플의 직종간 서열, 디자인이 최상층위이고…"

중앙일보 2012.05.31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는 지인이 있다. 지난해 초 현지로 출장 갔을 때 그의 소개로 엔지니어 한 분을 만났다. 여러 해 애플 본사에서 근무한 분이었다. 어떻게든 얘기를 듣고 싶었다. 애플 취재를 해본 기자들은 안다. 그 속을 들여다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홍보 담당자조차 “모른다” “말할 수 없다”란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그날 나는 운이 좋았다. 최대한 오래 묵힌 뒤 기사화한다는 전제하에 여러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부 내용을 축약하면 이렇다.

[분수대] 전 직원, 기자가 들춰낸 애플의 속살…성공 리더십의 핵심은?



 “애플은 마약조직이에요. 입사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옆을 기웃대지 말라’는 거예요. 사내 동호회 같은 것도 별로 없고, 한마디로 자기가 하는 일밖에 알 수 없어요. 규칙이 워낙 엄격하다 보니 나중엔 복도에서 눈도 안 마주치게 되죠. 친하게 지내 봤자 실수할 가능성만 커지니까. 이와 관련한 괴담은 무수히 많아요. 얼마 전에도 한 엔지니어가 아이 학교 행사에서 다른 학부모로부터 ‘애플에서 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간단히 답했다가 해고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사실일 거예요.



 애플은 외부에도 가혹해요. 특히 스티브 잡스가 누군가 ‘우리 걸 침범했다’ 생각하면 엄청난 공격이 시작되죠. 상대 회사가 파산하건 창업자가 알거지가 되건 개의치 않아요. 사는 집까지 압류해 버리니까. 한마디로 ‘(잡스) 눈에 보이는 건 못 참아!’인 거죠.



 직종 간 서열도 확실해요. 최상층위가 인더스트리얼 디자인(ID), 그 다음이 마케팅,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순이죠. 일단 모양, 기능부터 정한 뒤 무조건 만들어내라고 해요. 못 하면 어쩌냐고요? 죽는 거죠. 스트레스가 엄청난데 어떻게든 견뎌요. 돈이 아니라 자기들이 (그 제품을) 보고 싶어서.”



 최근 번역 출간된 애덤 라신스키 ‘포춘’기자의 책 『인사이드 애플』을 읽으며 내심 놀랐다. 지난해 엔지니어로부터 들은 얘기들이 거의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물론 더 생생하고 일목요연했다. 역자인 임정욱 전 미국 라이코스 대표의 말마따나 애플은 ‘투명 경영, 권력 이양, 정보 공유 등을 강조하는 현대 경영학 이론을 모든 면에서 거스르는’ 회사다. 한데 어떻게 지금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책은 결국 잡스라는 ‘걸출한 천재의 힘’을 말한다. 그는 ‘무서우리만큼 디자인을 중시하고, 최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절대 타협하지 않으며, 최고재무책임자를 제외하곤 누구도 손익 체계를 걱정할 필요 없는, 훌륭한 아이디어에 ‘아니오’라고 외치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애초, 언제고 승리를 보장하는 리더십의 정답 따위는 없다. 차 떼고 포 떼고 보면 결국 남는 건 열정과 도저한 욕망뿐. 어떤 스타일의 리더라도 조직원들의 가슴을 불타오르게 할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했다고 자부해도 좋으리라.



이나리 논설위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