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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비전을 보고 싶다 ① 탈분단

중앙일보 2012.05.31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일자리를 놓고 수학자, 통계학자, 경제학자가 경쟁을 하게 됐다. 면접관이 수학자에게 물었다. “2 더하기 2는 얼마지요?” “정확하게 4입니다.” 통계학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약 10%의 오차를 두고 평균적으로 4가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살그머니 면접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얼마로 만들길 원하십니까?”



 경제학자를 조롱하는 농담은 수없이 많다. 1년에 두 번 바쁜 사람이 경제학자란 말도 있다. 연초엔 경제 전망을 하느라 바쁘고 연말에는 그게 왜 틀렸는지 분석하느라 바쁘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가정(假定)의 학문’이다. 가정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경제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변수를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예측이나 전망은 천차만별이다. 오죽하면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경제 보좌관에게 질린 미국 대통령(해리 트루먼이란 설도 있고, 존 F 케네디라는 설도 있다)이 “‘외팔이 경제학자(one-handed economist)’는 없느냐”고 짜증을 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을까.



 객설이 길어진 것은 20년 뒤인 2031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로 떨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룩셈부르크(0.6%)를 제외하고 꼴찌가 될 거라는 OECD의 경제전망 보고서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기초체력 문제를 미리 지적하고 경종을 울려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아마 모르긴 몰라도 20년 후 OECD는 이 전망이 왜 엉터리였는지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릴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OECD는 가장 중요한 변수를 무시했다. 북한 변수다. 앞으로 20년 사이에 남북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상이 유지될 수도 있고, 극적인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통일에 성큼 다가설 수도 있고, 이미 통일이 됐을 수도 있다. 북한 변수를 배제하고 20년 후 한국 경제를 논한다는 것은 구두 신고 발바닥 긁는 격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수 중 하나는 북한이다. 북한 변수가 한국 경제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남북관계를 끌어가는 것은 정치 지도자의 몫이다.



 지금까지 북한 변수는 한국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한 변수가 한국 경제에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금융회사인 모건스탠리에서 이머징 마켓 담당 책임자로 있는 러처 샤머가 대표적이다. 그는 얼마 전 출간한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스(Breakout Nations)』란 책에서 평화롭고 성공적인 통일만 이룰 수 있다면 한국은 ‘아시아의 독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통독 과정에서 서독이 했던 실수, 즉 동서독 통화를 1 대 1로 통합한 것과 같은 멍청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7500만 명의 탄탄한 소비 시장을 갖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순직 수석연구원은 통일은 비용보다 편익이 큰 ‘남는 장사’라고 강조한다. 북한 주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도달할 때까지 남한이 쏟아부어야 할 돈을 통일 비용이라고 한다면 통일 후 10년간 1570억 달러(약 184조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반면에 국방비 감축, 국가신용등급 상승, 북한 노동력 활용, 북한 지하자원 개발, 관광수입 증대 등 통일로 남북한이 얻게 될 모든 이익을 통일 편익이라고 한다면 통일 후 10년간 2200억 달러(약 257조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통일 후 10년간 630억 달러(약 73조원)의 플러스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골드먼삭스의 권구훈 상무는 통일 후 10년간 7000억 달러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편익은 1조 달러에 달해 비용을 상쇄하고 남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경제학자의 예측인 만큼 새겨서 들어야 한다.



 대권을 꿈꾸는 지도자라면 분단 극복과 통일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에 들어가는 돈을 일방적인 퍼주기로 생각하는 협량(狹量)이나 북한 핵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조급증으로는 탈(脫)분단의 비전을 내놓을 수 없다. 남북 경협사업이나 관광사업으로 북한에 흘러가는 돈을 펌프에 붓는 마중물로 생각할 때 그런 비전은 나올 수 있다. 누가 그런 비전을 보여줄 것인가. OECD의 암울한 2031년 한국 경제 전망을 한 큐에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런 통쾌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는 누구인가.





◆‘비전을 보고 싶다②’는 ‘탈(脫)탄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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