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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배 “세계 최대 뷰티 복합단지 출발은 할머니의 부엌”

중앙일보 2012.05.31 00:00 경제 2면 지면보기
고 윤독정 여사
매출 4조원대 회사를 이끄는 마흔아홉 살의 최고경영자(CEO), 이 남자의 아침은 ‘버블클렌징’으로 시작한다. “아침 세안은 피부에 자극이 없도록 부드러운 거품으로 해야 하죠.” 외출 때는 선크림을 잊지 않고 챙겨 바른다. “피부 노화의 주범인 자외선을 차단해야 해요.”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클렌징 오일로 코 주변의 피지를 말끔히 제거한다. 폼 클렌징으로 노폐물을 씻어내는 개운한 저녁 세안 역시 하루 일과의 필수 코스라고 한다.


오산에 준공 … 연 6000만 개 생산

 이 중년 남자의 ‘하루 종일 피부 생각’은 집안 내력이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아녀자들의 머리 맵시용 동백기름을 짜서 팔아 아이들을 키웠고, 아버지는 이 ‘가내수공업’을 번듯한 기업으로 키워냈다. 국내 화장품 시장 점유율 40%인 1위 업체 아모레퍼시픽 서경배(49) 대표이사 이야기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30일 경기도 오산 뷰티사업장 준공식에서 “아시안 뷰티를 완성하는 전초기지가 될 뷰티캠퍼스가 완성됐다”며 “글로벌 기준에 맞는 ‘절대 품질’을 추구하기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아모레는 30일 경기도 오산에 22만4000㎡(약 6만6000평) 규모의 뷰티사업장을 준공했다. 수요 예측에서부터 원료 생산과 관리·제조·포장·물류·배송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져 주간 120만 개, 연간 6000만 개의 화장품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수준의 화장품 생산 복합단지다. 이날 준공식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 대표는 “저희 공장의 출발은 (창업자의) 어머님의 부엌”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개성의 작은 부엌에서 좋은 원료를 고집하면서 동백기름을 만들었던 ‘창업자의 어머님’의 고집과 정성, 거기서 시작한 아모레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세계의 부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63년생인 서 대표에게는 할머니인 고(故) 윤독정(1891~1959) 여사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윤 여사는 그의 경영관과 일생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미친 여성이다. 그는 윤 여사를 ‘할머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창업자의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손주로서의 애틋함보다는 기업가로서의 존경심을 드러낸 것이다.



 창업정신은 오산의 새 사업장 곳곳에 스며 있다. 사업장 뜰 한가운데에는 윤 여사가 부엌에 놓고 동백기름을 짜던 기름틀을 상징하는 조각품을 설치했다. ‘좋은 원료’를 중시한 윤 여사와 선친 서성환 회장의 의지를 기리는 ‘아모레원료식물원’도 만들었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캐머마일·로즈메리·세이지 등의 허브와 작약·황금·천궁 같은 한방 약초를 포함해 200여 종의 식물을 이곳에서 직접 기른다.



 서 대표의 경영 스타일은 내실을 중시하는 ‘한 우물 파기’다. 아모레는 창업 후 67년간 인수합병을 단 한 번 했다. 지난해 프랑스 향수 브랜드 ‘아닉구탈’을 인수한 것이 전부다. 서 대표는 간담회에서 “인수 기회는 계속 생겨나리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패션 등 인접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기보다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깊이 파서 전 세계에 확산하는 것이 우리의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아모레는 최근 3년간 그룹 매출이 두 배로 늘었다. 홍콩과 중국 등에서 라네즈·설화수가 ‘한류 뷰티’를 주도해 해외 매출도 지난해 3272억원으로 전년(2667억원)보다 23% 늘었다. 이에 힘입어 서 대표는 이날 “2020년까지 매출 100억 달러(약 11조7000억원)의 글로벌 7위권 화장품 회사”라는 새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품질 중시 제조업체’로서 받는 도전과 위협도 거세다. 미샤·토니모리·네이처리퍼블릭 등 저가 브랜드숍은 제조에 힘을 쓰지 않고도 연간 수천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제품의 대부분 혹은 전부를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한국콜마·코스맥스 같은 제조사로부터 공급받아 가두점 유통망과 광고·할인 같은 마케팅에 집중해 고성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서 대표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브랜드와 제품 성능을 강화하는 고전적 방식을 유지하면서 방문판매와 이커머스 시장을 포함한 유통·소매 역량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오산=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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