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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따라 700리

중앙일보 2012.05.30 03:40 주말섹션 1면 지면보기
지난해 말 전구간이 완성된 부산 갈맷길 700리(263㎞).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로 갈매기가 노는 길이란 뜻이다. 사진은 갈맷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산시 남구 이기대 공원 구간. [송봉근 기자]
우리는 땅 위를 걸으면서 하늘 아래를 같이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아, 그때, 그곳이지’라고 새롭게 다시 받아들이는 땅과 하늘을 발견하고 재조립한다. 걷는다는 것은 난삽한 이해타산적인 개발로 해체된 땅과 하늘을 내 품속에서 원형으로 재구성한다.



우리가 걷는 부산은 대륙과 대양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은 단군신화를 통하여 홍익민족임을, 대양으로 가는 길은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후를 통하여 다민족임을 우리의 가슴으로 다시 품는 것이다. 그 출발지 부산은, 세계 어느 도시도 갖고 있지 않는 산·바다·강·호수의 사포(四浦)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걷는 이들에게 안식을 주는 온천까지! 부산은 사포지향(四浦之鄕)의 길이며, 그 길은 갈매기가 언제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갈맷길이다.



부산 갈맷길은 700리이다. 700리 갈맷길 9코스에서, 우리는 익숙한, 그러나 새롭게 다가서는 땅과 하늘 그리고 부산의 역사와 문화, 그 흔적들을 묻어 놓고 있는 자연·인문환경을 만난다. 그 만남은 전통 무속신앙에서부터 고산 윤선도를 거쳐서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로, 오륙도를 배경으로 한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을, 신선대에서 태종대로 이어지는 부산항의 역사 파노라마와 해안절경으로, 부산 바다와 낙동강과 남해바다로, 낙동강의 철새들과 정거생태마을의 도요 물떼새들의 비상으로, 낙동강 삼락 둔치 갈대밭과 신라의 지관 성지(聖知)가 발견한 명당인 성지곡수원지로, 한국산 개구리 보호지역 쇠미산 습지와 금정산성, 천년고찰 범어사 그리고 수영강 중·상류 회동수원지로, 수영강 따라 옛 좌수영을 지나면서 바다를, 철마천과 이곡천을 따라가다 아홉산과 일광산 허리를 휘감아 돌면서 오기영의 ‘장전구곡가(長田九曲歌)’로 이어진다.



이처럼 부산 갈맷길 700리에서는 고조선에서 현대 역사까지, 고대 예술에서 현대 예술까지, 무속놀이에서 현대 축제까지 만난다. 이런 만남을 다른 어느 길에서 볼 수 있을까.



글쓴이 민병욱 교수
㈔‘걷고 싶은’ 부산 집행위원장,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부산문화관광축제 조직위
집행위 부위원장
‘산티아고 가는 길’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 ‘The Way’(원제 : Off the Road)에서도 그 길이 종교적 순례에서 시작하여 개인 상처의 치유로 현재화되고 있다. 고행의 길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부산 갈맷길은 종교적 순례의 길도, 개인적 상처 치유의 길도 아니다. 부산 갈맷길은 갈매기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자연의 길이다. 우리는 갈맷길을 걸을 때, 마치 갈매기의 자유롭고 느린 비상처럼 부산의 자연과 환경, 인문과 역사를 만나기도, 만나지 않기도 한다. 걷기는 만남과 만나지 않음을 영원히 되풀하기 때문에.



글쓴이 민병욱 교수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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