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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긴 저 브론즈, 인간의 고독이 보이는가

중앙일보 2012.05.30 00:12 종합 26면 지면보기
부르주아
“그녀는 평생 불안해했다. 버려지는 것,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어려선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집을 자주 비웠던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병약했던 어머니가 그대로 세상을 떠날까 불안했다. 78세였던 198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전시하러 가선 갑자기 호텔방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고집 부려 난감한 적도 있었다.”


‘마망’의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
타계 후 국내 첫 회고전 열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1911∼2010)의 어시스턴트로 30여 년 일했던 제리 고로보이(59)의 회고다.



고로보이는 부르주아 타계 후 국내 첫 회고전 설치를 위해 방한했다. 그의 초기작과 말기작을 모은 전시 ‘저명인사(Personage)’가 다음 달 29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3관에서 열린다.



부르주아의 초기작 ‘무제’(1947∼49, 167.6×30.5×30.5㎝). 바늘귀·창문 혹은 사람 얼굴을 닮은 네모가 있는 등신대의 조각이다. [사진 국제갤러리]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난봉꾼이었다. 아이들 가정교사와 집에서 불륜행각을 벌였고, 어머니는 이를 묵인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부르주아를 평생 지배한 코드다. 생전에 그는 “예술의 목적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부르주아는 삶의 치명적 상처를 예술로 치유하고 발산했다. 소르본느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며 안정적인 세계를 동경했지만 나이 마흔에 예술에 입문한 대기만성형 작가다. 일흔한 살 되던 8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회고전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심장마비 증세로 99세에 타계하기 전까지도 작업에 몰두했다. 대표작 중 하나로 어미 거미 모습의 대형 청동 조각상 ‘마망(Maman)’이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도 설치돼 있다.



 전시엔 1945∼56년 나무로 만든 추상 인물 조각 ‘저명인사’ 연작 13점과 말기작인 ‘밀실(Cells)’ 연작 한 점이 나왔다. ‘저명인사’는 첫 개인전 후 4년 만인 1949년 뉴욕의 갤러리에서 선보인 작품을 토대로 80~90년대 작가의 감독하에 브론즈로 재제작한 것. 1938년 남편과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파리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사람만한 크기인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가늘고 단순화시켜 인간의 고독을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묘사했다.



 90년대 시작한 ‘밀실’ 연작은 부르주아의 주된 모티브인 ‘가족’과 ‘집’을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감옥 같은 타원형 철망 공간 속에 토끼가죽, 천조각을 매달았고, 초기작과 비슷한 솟아 오르는 형상도 늘어 놓았다.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토끼가죽 팔아요, 걸레로 쓸 낡은 천조각 팔아요”라고 외치고 다녔던 행상에 대한 기억이 담겼다. 그는 “나는 다만 아는 것에 대해서만 얘기할 뿐. 모르는 것에 대해선 얘기할 수도 없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늘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게 그녀는 불멸의 예술가로 남았다.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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